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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Oct 31. 2017

진짜 책임감

무책임한 걸 피하려다 진짜 무책임해지지 마

- 돌고래는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거 알아? 그래서 자살을 선택할 수 있대. 숨 쉬는 걸 그만둘 수 있다는 거지. 


맥주잔을 들고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너는 말했다. 나는 그 순간, 그 말의 청자가 내가 아니라 너 자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무슨 일 있어?

- 나 있잖아. 3달 전에 처음으로 공황발작이 왔었다?


공황. 그 말에 나는 아득해졌다. 수도 없이 책에서 보고, 입으로 외우고, 손으로 써 내려간 그 증상이 내 친구에게 나타났다. 어느 드라마에서 문득 이런 비슷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 불치병이래, 이런 대사였나.


- 사람들은 빨리 움직이는데, 자신만 멈춰 있는 기분이야. 내 시간은 시분초 단위보다 더 작은 단위로 쪼개져 흘러가는데, 다른 이의 시간은 연월일로 뭉쳐져 지나가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숨 쉬는 걸 내가 의식하고, 그래서 내가 주의하지 않으면 숨이 멈춰버릴 것만 같고, 그리고 그렇게 죽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야. 

-....... 그건

- 스트레스지. 알아. 이유는 스트레스야. 일은 내가 다 하는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을 때 느끼는 좌절감. 내가 가진 책임감에 비해 성취하지 못한 죄책감. 그래서 더 일을 많이 하는데 거기서 오는 과로감 그리고 무기력함. 이유가 뭔지 나도 너무 잘 알아. 


나는 그런 널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런 널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같이 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너는 항상 내 극단에 있었다. 내가 깃털처럼 가벼웠다면 넌 바위처럼 무거웠고, 내 말이 칼날처럼 예리했다면 네 말은 도끼처럼 둔중했다. 난 교묘했고, 넌 순수했다. 


- 네가 지금 느낀 일에 대한 책임감, 그건 네 몫이 아니야


그 말을 네게 하고 집에 가던 날, 나는 스스로 때가 참 많이 묻었다고 중얼거렸다. 처음 일하는 네가 왜 그렇게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한 때 그런 순수한 열정을 불태웠으면서도, 나는 그 말 아니고선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마치 첫사랑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헌신하던 그때의 나를 그리워하듯, 널 부러워하면서도 내 입에서 모진 말들이 튀어나왔다. 무책임해서 싫다는 네 말에 괜히 웃음이 났다.


- 나는 그게 무책임이라고 생각 안 해. 너의 그런 행동이 오히려 무책임한 거지. 네 인생에 대해 무책임해.


너는 여전히 아무 별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지금 우린 선장이 아니잖아. 우린 노를 젓는 선원인 거야. 아주 열심히.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저어도, 우리가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배가 가지 않아. 왜냐면 그 배의 방향은 선장이 정하는 거거든. 


그제야 너는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본다.


- 노를 이렇게 열심히 저었는데, 왜 배는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거냐고 스스로를 탓해? 선장에겐 선장의 책임감이, 선원에겐 선원의 책임감이 있는거야. 그건 엄연히 달라.

-... 그렇네

- 무책임한 걸 피하려다 정말 무책임해지지 마. 너는 회사의 선원이면서 동시에 네 인생이라는 배를 잘 이끌어야 할 선장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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