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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Nov 22. 2017

바늘처럼 가늘어진 낙타

세상에 그런 낙타는 없다

내 탓하는 걸 학습해왔다. 기억이란 게 존재하는 시점부터. 시험을 못 보면 내 탓, 아름답지 못하면 내 탓, 멍청하면 내 탓. 그래서 당연히 남도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본인이 부족해 거기 있는 거라고. 본인이 못해서 받는 결과라고. 그러니 본인의 잘못을 남에게 돌리지 말라고 손가락질했다. 한 번도 망가져본 적 없어서 그 따위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징징거리는 것도 싫고, 떼쓰는 것도 싫다고. 바늘구멍에 낙타 들어가는 격이라고 해도, 그럼 바늘만큼 가는 낙타가 되면 된다고. 어쨌든 바늘구멍만큼 길은 있는 거 아니냐고. 참 적으면서도 한심한 말들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지껄였다.

진짜 살면서 처음으로 바늘구멍을 맞닥뜨린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옆에 있다면 다신 입을 벌리지 못하게 입술에 강력 접착제를 발라 놓고 싶은 심정이다. 다시 입을 연다면, 입술이 뜯어지고 피가 흐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만큼. 아니, 그래도 그 고통도 그 당시 내가 말로 사람들에게 줬던 고통과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친구에게 옛날의 나라면 지금의 나를 비웃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저렇게 한심한 사람과는 연을 맺지 않겠다고, 내 표정, 내 말투 아주 생생하게. 그러자 친구는 끌끌거리며 웃었다. 웃는 건지 흐느끼는 건지 알 수 없는 웃음소리. 무슨 말인지 이해하면서도, 그래도 그는 지금의 내가 더 좋다고 했다. 그의 위로에 나는 허무와 안도의 경계에서 조용히 자리 잡았다. 예전엔 못 느껴본 기분이다. 나날이 처음이 희소해지는 생 속에서 매번 새롭고 매번 나를 아프게 찌르는 감정이다. 김윤아 4집의 유리와 꿈, 타인의 고통, 다 지나간다, 를 듣고 있을 때,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고 있을 때, 한강의 [흰]을 읽고 있을 때. 조용히 눈을 감고 과거의 내가 던진 창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지금의 내가 아프다, 말을 못 하는 이유도 아플 자격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말대로, 그간 나는 사람들을 얼마나 개같이 대했는가. 멍청이. 정작 자기가 개처럼 대해져 봐야, 아니 개처럼 대해질지도 모른다는 고통 속에 몸부림쳐봐야, 타인의 고통이었던 귀를 후볐던 이야기에 마음을 후벼 판다. 


김윤아의 노래대로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 곧잘 깨져서는 자신을 할퀸다. 그런 우리에게, 식료품 배급소에서 통조림을 따버린 케이티에게, 다니엘은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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