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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Nov 12. 2017

몸보다 더 몸몸

미뇽의 움직이는 성

서울에 올라온 지 9년이 되어간다. 살아온 시간만큼 짐이 늘었다는 걸 매번 이사 때마다 확인한다. 도서관에선 2시간마다 자리를 옮겨야 했지만, 서울에선 2년마다 집을 옮겨야 했다. 2년의 굴레의 다른 이름, 임대계약. 이번 2년 루프는 연남동에서 돌기로 했다. 

이사를 앞둔 일주일은 박스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보이는 족족 박스를 옆구리에 끼었다. 테이프 뜯는 소리에 고양이들은 털을 세웠다. 쫙쫙거리는 소리가 고양이들의 털을 잡아 뜯을 기세였으니. 너무 무겁지 않게 가장 무거운 책을 각 박스마다 나눠 넣고, 옷을 채우는 과정의 반복. 정말 이사란 건, 루프의 루프의 루프 인지도 모르겠다고, 매일 새벽 뺑뺑이를 돌았다.

이사 당일, 비가 왔다. 비가 오는 날, 이사하면 복이 들어온다는 말을 안 듣고 싶어 질 만큼 많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몸이 부서질지도 몰라.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처럼, 날개 잘린 우투리처럼 무기력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미소 용달 아저씨였다. 노출된 1톤 트럭이 올 줄 알았는데, 뒤에 천막으로 쳐진 트럭이 와서 안도의 숨을 지하 1km만큼 내쉬었다. 짐이 많아 아저씨가 싫어할까 걱정이었는데 호빵맨 수준으로 웃는 얼굴을 장착하셨다. 

이사하는 날 나의 기분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소피랄까. 정말 서울살이, 미뇽의 움직이는 성..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짐을 다 싣고, 앞에 올라탔다. 짐 아저씨, 나, 동생 그리고 무릎 위에 고양이 두 마리. 사람 셋 고양이 둘, 짐들의 여정. 내심 운전석이 터지진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 날 정말 꽉 찬 1톤이었다. 내 생애 그 정도 꽉 참은 처음이야.

운전대를 잡은 아저씨를 옆에서 지켜보다가 또 궁금증이 발동했다. 그는 어쩌다 이삿짐을 나르게 되었을까. 가끔 내 선에 생각지도 못하는 선들이 겹쳐질 때, 문득 드는 호기심 같은 거. 또 그게 시작됐다.

- 원래는 코XX 설치하러 다녔어요. 근데 그거 하다 보면 세상을 진짜 내가 미워할 것 같더라고요. 

아저씨는 말끝마다 허허거리며 웃었다. 지금이 좋아서 그런 건지, 그때가 싫어서 그런 건지. 그걸 알려면 조용히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 이사일 시작한 지는 1년 좀 넘었어요. 이거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다 너무 좋은데, 그때 정수기 설치하러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 싫었어요. 

그때를 떠올리는 것도 싫었는지 아저씨는 운전대를 으스러지게 쥐었다. 주사를 맞기 전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 몸은 더 힘들잖아요
- 그쵸. 이삿짐도 무겁고. 근데 학생, 마음도 몸이에요. 어쩌면 마음이 몸보다 훨씬 몸인 것 같아요. 마음이 안 좋으면 몸은 바로 안 좋아지는데, 이거 하면서 몸이 피곤하다고 마음까지 피곤하진 않더라고요. 

짐 아저씨는 자신이 나가고 자신의 동기 중 십여 명이 회사를 퇴사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 같이 이사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짐 아저씨의 얼굴에 그 이유가 있었다. 이 사람, 지금 진짜 행복하구나, 그런 걸 느낄 수 있던 얼굴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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