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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Dec 11. 2017

올해는 최악이라서 좋았다

미친 말인데 그렇다.

언제쯤 올 한 해는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려나. 아무래도 이번 생도 다음 생도, 그런 해는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언제부턴가 매해가 최악을 경신하는 시간이었으니까. 2017년도 그랬다. 2016년도 분명 최악이었는데, 2017년은 그것보다 훨씬 더 최악이다. 그런데 웃긴 건, 최악이라서 괜찮다, 아니 오히려 좋다. 미친 말인데 그렇다.


인간에겐 생애주기라는 게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일정 단계. 출생, 진학, 취업, 결혼, 출산, 죽음 등으로 이루어지는 생애주기를 포기한 건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다. 아니, 포기했다기보다는 나만의 생애주기를 만들어가기로 했다. 


정말 위험할 때 안전장치가 발동한다. 서핑할 때 바다 깊숙이 빠져들어갈수록, 나를 붙잡는 리쉬가 팽팽히 날 잡아당겨 물밖로 빠져나오게 하는 것처럼. 2미터도 채 안 되는 그 끈의 존재를 알아차린 올해였다. 물론 그만큼 떨어지기만 했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작년엔 어디까지 떨이질 지 모르는 내 인생 가장 낮은 곳에 있었는데, 올핸 정말 밑바닥이었다.


세상 쓸모없는 인간. 한 때 가장 사랑했던 스스로를 혐오하며 보낸 365일. 과녁에 자신을 세워놓고, 칼을 던지는 기분은 끔찍하다. 그 칼에 맞으며 스스로 못났다고 중얼거리는 것도. 그렇게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면서 매일 밤을 뜬 눈으로 보내는 최악의 나날들.


그동안 바닥에 뭐가 있는지 모르며 살았다. 모를 필요가 있었고, 알 필요가 없었다. 스물여섯에 처음으로 디뎌본 나의 바닥, 나태함과 무기력이 뒤섞인 올가미에 붙잡혀 한동안을 빛이 어른거리는 수면만을 올려다보았더랬다. 그러다 아 빛이 보이는 거면 그렇게 깊은 곳이 아니구나 했고, 내 발을 끌고 올라가려는 단단한 끈이 느껴져 올라가야 하구나 했고, 이젠 올라가고 싶었다.


그렇게 자세를 고쳐 잡고 이제 나는 올라가려 한다. 이게 바닥이면 딛고 올라서면 되겠다는 동창의 말이,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십자가를 진다는 친구의 말이 그제야 와 닿는다. 나를 죽이지 못한 모든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이 더 단단하게 내 마음에 자리 잡는다.


최악이다. 정말 이렇게 최악일 수가 없다. 그래서 다행이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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