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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an 23. 2018

처음부터 우린 다른 종이었어

그걸 몰라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거지.

아무것도 모를 때 만나서,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조차 몰랐던 사이가 있다. 가족, 연인, 친구. 어떤 관계에서든 마찬가지다. 나는 새끼고양이, 너는 강아지였는데, 우린 서로가 다른 종인 줄도 몰라서 가까워졌다가 크고 나서 알게 된 꼴이다.

성향이든 성격이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맞지 않으면 멀어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지만, 한 때 가까웠기에 그들과 멀어지는 건 아픈 일이다. 가까웠던 시간이 길었을수록, 살이 갈라지듯 마음에 금이 간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과는 항상 거리가 있다고 누군가 말하지만, 이제 나는 그 거리가 조금은 좋다. 물론 회사마다 '거리'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했던 곳에서는 항상 서로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었으니까. 이상하게도 그 거리만 지켜지면 멀리 있어도 항상 그 자리에 사람들은 있었고, 회사를 옮겨 다녀도 내 삶에 항상 그 거리 안에서 존재했다. 가끔 연락해도 반가운 사이, 가끔 연락해서 반가운 사이가 많아졌다.


영원할 거라고 바란 적도 없고, 언젠가 끝나는 건 당연하다고 느꼈던 이십 대가 나에게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끝물에 이르는 때가 왔다. 나도 그들도, 지금껏 맺어온 무수한 관계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때 만나 친구가 되었지만, 지금이라면 친구가 되지 못했을 사이들이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모두를 무겁게 눌렀다. 


친구가 됐던 그때의 너는 이제 없는데, 자꾸 그때의 너를 바라던 나에게. 너는 모르겠지만 너와 만나는 걸 참 힘들어하며, 이젠 지루해하며, 재미없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데 솔직하면 상처받을까 오늘도 입을 닫는 나에게. 이렇게 관계는 천천히 멀어지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우리에게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더 이상 예전만큼 만나지 않는 건,
더 이상 우리가 예전 같지 않아서라고. 


 웃기다. 인간은 꾸준히 성장하고 계속 바뀐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면서, 우리는 왜 서로가 바뀌지 않기를, 우리 자신이 바뀌지 않길 바라면서, 이미 멀어진 서로의 손을 잡기 위해 버둥대는 걸까. 만나지 말아야지 하면서 만나고, 만난 후에 만나지 말 걸 하며 후회하고. 그래 이렇게 바보 같은 게 진짜 삶인가 보다,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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