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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Feb 04. 2018

우리네 엄마들

자식들의 이야기 속에서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나와 내 친구들의 엄마들은 100세 인생의 중간 지점에 접어들었다. 이는 신체적으로 엄마들에게 조금 이르던, 늦던 폐경과 함께 갱년기가 찾아온다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워킹맘에겐 은퇴라는 하나의 끝이, 주부들에겐 자식들의 독립과 함께 '엄마'라는 역할의 축소가 이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요새 친구들의 입에서 부쩍 엄마에 대한 걱정이 잦아졌다.


엄마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다. 누구에게든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또다시 새로 나아가는 건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우리네 엄마들의 그 돌아보는 과정이 너무나 시리고 아파서, 굳이 이렇게까지 상처 입으며 나아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 힘들어서. 우리는 어쩔 줄 몰라하는 마음으로 엄마들을 지켜보고 있다.


너네 아빠는 돈이라도 많이 벌었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돈을 벌지도 않았고 일을 하지도 않았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야.


전업주부인 친구 C의 어머니는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 절대 아무것도 아닐 리가 없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니. 친구와 친구 누나를 잘 키워냈고, 항상 아빠, 누나, C의 입에 맛있는 걸 넣었으며,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집의 물건들을 제때 배치했고, 다른 가족들이 밖으로 도는 동안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중심축을 했던 엄마였다. 그런데 왜 엄마는,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돌아보게 된 걸까. 엄마가 그동안 해왔던 일은, 왜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 걸까. 어떤 말도 엄마에게 위로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엄마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들을 적었다고 했다. 자신과 누나, 맛과 멋에 대한 기준, 항상 위태롭지만 끊기지 않는 아빠와의 연결고리 같은 것들을.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아왔나 싶어.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살았나.
너네를 보면 내가 잘못 산거 같은데,
분명 그땐 최선이었는데
근데 지금엔 변명 같은 거야.

내 삶이 고작 그런 변명 같은 거야.


B의 엄마는 차라리 예전이 나았다고도 했다. 딸만 셋, 아들을 낳지 못한 대가를 그녀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철저히 치러야 했지만, 그 예전이 마음은 편했다고 했다. 오랜 시기받아온 고통이, 이제와 받지 않아도 됐던 고통이라고 생각하니, 그게 더 힘들다며, B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다는 말에 듣는 딸들의 눈이 촉촉해졌다. B는 그런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 엄마가 있어서 자기와 언니 둘이 있다는 말을 했다. 잘못 산 게 아니라, 희생된 거라고, 엄마의 희생은 절대 변명 같은 게 아니라고.



좋은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어떤 엄마에겐 변화가 반갑고, 또 어떤 엄마에겐 변화가 아프다. 변화하는 것, 변화하지 않는 것,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분명한 건, 우리네 자식들에게 엄마는 그 어떤 식으로든 가슴을 울리는 존재라는 것. 변해도, 변하지 않아도, 변하고 싶거나 변하고 싶지 않거나. 엄마는 언제나 자식 마음속에 맺혀있는 눈물 같은 존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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