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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Mar 14. 2018

빚나는 발리여행 1

다들 어디서 돈이 났냐고 물었지

여행을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 날 부유한 집 금수저라고 불렀다. 떠나기만 하면 2-3달은 기본이니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sns에서 건너 건너 내 소식을 보고 듣게 된 친구의 친구들은, 내 친구들에게 물었단다. 걔네 집 잘 사냐고. 가까운 이들도 물었다. 너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나서 여행 다니냐고. 엄마 아빠도 물었다. 너 돈 있냐고. 돈 없다고 하면서 여행 간다고 말하면 꾸지람부터 들을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히죽히죽 웃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 여행, 다 빚져서 간 거라고.


빚 나는 여행

최근에 떠난 장기여행은 작년 5월부터 7월까지 머물렀던 발리였다. 답 없는 취준 생활에 내가 내린 답이었다. 그 전 유럽 여행들은, 인턴이나 프리랜서 활동이 끝난 내게 준 선물 같았지만, 발리 여행은 좀 달랐다. 그전 여행들은 주어진 삶을 따라가는 게 옳다는 전제 하에 열심히 살아온 내게 준 선물이었다. 내가 밟아가야 하는 여러 단계 중 한 단계의 끝이기도 했다. 하지만 발리 여행은, 이대로 사는 게 옳은가, 결국 이렇게 피 토해내고 매일 밤을 지새우며 원하는 곳이 직장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가, 그런 고민들의 과정이었다. 주어진 삶이 아닌 만들어가는 삶에 대한 갈망이었다.


고생만 사서 하나? 여행도 사서 해야지.


매일 같이 나를 깎아먹는 취준 생활 속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누군가 말했고,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또 누군가 말하니까 어느 쪽이든 내 마음 가는 결정을 내리기로 했을 때 발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빌린 돈이 150만 원


수중에 있던 돈까지 하면 세 달 동안 발리에서는 20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썼다. 고작 그것 가지고 살 수 있을까 싶지만 살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서울에서 취준 생활을 하는 것보다 발리에서 취준 생활을 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돈이 훨씬 적게 들어가면서, 훨씬 행복했으니까. 호텔급 시설을 한 달에 빌리는 돈이 끽해봐야 30만 원, 한 달에 오토바이 렌트 값 7만 원, 세 달 보드 렌트 값 15만 원. 오토바이 기름을 만땅 채우면 3천 원인 곳에서, 나는 꽤 부유하게 살았다. 몇 박 며칠 여행 온 사람들처럼 삐까번쩍한 식당에 매일 같이 들르는 대신, 삐까뻔쩍한 바다 위를 매일 같이 떠다녔다는 것만 빼면.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발리에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빛나는 여행의 빚이었다. 그리고 그 빚을, 드디어 다 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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