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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Aug 30. 2017

28.  서핑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

제자리에 있는 것조차 힘든 때가 있다

서핑은 무서운 게 많은 스포츠다. 물 자체가 무서울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발 밑이 두려울 수도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바다가 그 모든 공포의 원인이다.

서핑할 때, 너는 뭐가 제일 무서워?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답은 물속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것도 아니었고, 숨이 멈출 것 같은 1초도 아니었다. 육지와 가까워지지 않는 것, 나는 그게 제일 무서웠다.

바다에는 우리가 '해류'라고 부르는 흐름이 존재한다. 그 흐름에 따라 모래가 쌓여 백사장이 되고, 돌이 깎여 절벽이 된다. 들어오는 물이 있으면 나가는 물도 있기 마련. 무릇 서퍼라면 이 나가는 물의 흐름을 눈여겨보는 게 인지상정! 이는 곧 안전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변으로 밀려오는 물은 바다 바닥에 흙이나 돌을 쌓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닷속 모래언덕이 임계치를 넘으면 와르르 무너지는 일이 생긴다. 바다 바닥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바다는 일심동체라 곧 해류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그때 갑자기 해변에 있는 물들이 와르르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바닷물의 흐름을 우리는 '이안류', 역파도라고 부른다.

바다가 치고 빠져봐야 얼마나 강하겠냐고 쉽게 생각하다간, 뒤통수를 제대로 맞는다. 한번 이안류에 휘말리면, 자력으로 빠져나오기 꽤 힘든 수준이니까.

저 이안류에 쓸려가는 개미 떼 같은 사람 떼를 보노라면


가끔 서핑할 때, 이런 이안류에 휘말리는 순간이 온다. 이글아이를 가져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는 한, 이안류의 존재를 알아차리기가 꽤 어렵기 때문이다.

이안류에 휘말리면 처음, 공허함이 찾아온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열심히 손을 저어봐도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러다 지쳐 조금 숨이라도 돌리기 위해 멈추면, 뒤로 더욱더 밀려나버리고 만다. 그때, 공허함은 점차 좌절감으로 변한다. 발버둥 쳐봐야 제자리, 발버둥 치지 않으면 뒤처지고 마는 현실이 사람을 좌절시킨다. 분명 눈앞에 육지가 있는데, 영원히 육지와 가까워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찾아왔을 때, 애어른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은 울음을 터트린다. 나도 이때가 가장 무섭다. 노력하면 제자리,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그 순간, 앞으로 더 얼마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고, 그 결과조차 장담할 수 없을 때, 누군가의 손이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이 숨 쉴 수 없어진다.

그럴 땐, 방향을 살짝 틀고 포기하지 않는 거야


그런 나를 구해준 건, 함께 서핑하던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방향을 45도로 틀어 앞과 옆을 같이 보되, 끊임없이 패들링 하라는 목소리. 구원의 목소리를 따라 한참을 팔이 빠져라 패들링을 했을 때, 비로소 나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육지를 마주 볼 수 있었다.

바다에 계속 뛰어들 거라면, 또 언젠가 필연적으로 나는 이안류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피하는 요령이 생겨 빈도수를 줄인다고 하더라도, 바다의 모든 변수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여전히 나는 서핑이 너무 무섭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방향을 살짝 틀고 끊임없이 나아가면 결국엔 벗어날 수 있다는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한가지 더. 어떨 땐 제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대견한 순간이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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