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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Aug 29. 2017

27.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

발리에서 만난 사람들 2

여행이나 일상이나 사람이 가장 힘들고 사람이 가장 좋다. 발리에서 보낸 두 달도 마찬가지. 발리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한국에서라면 길 가다가 만났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과 나를 묶는 끈은 단 하나, 서핑뿐이었다. 각자 다른 보드를, 각자다른 자세로 타는 사람들.  나는 이들을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휴직 후 6개월간 발리에서 살기 시작한 올리브 언니. 회사에 휴가 내고 온 내 친구에게 언니는 퇴사 뽐뿌를 불러오는 원인이기도 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나와 꽃길만 걸어야 하는 올리브 언니인데, 발리와선 지옥길만 걸어서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언니가 바다에 들어서면 잔잔한 바다에 큰 파도가 용솟음치곤 했었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서 올리브 언니는 파도의 전령이자, 파도 희생양으로 불리곤 했더랬다. 올리브 언니는 이미 나와 만나기 전, 보드 핀에 박혀 머리를 꿰맨다거나 자기 보드에 맞아눈탱이 밤탱이가 된다거나 하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부상을 입었었다. 나와 함께 있을 때에도 오토바이 사고가 난다거나, 끈질긴 동남아 병으로 끙끙 앓았었는데, 내가 떠난 후엔 파도에 말려 고막이 터졌다고…

하지만 그런 언니에게 발리는 여전히 살고 싶은 곳이다. 화장실 갈 여유, 밥 먹을 여유조차 없이 패션회사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해왔던 언니에게 모든 여유가 주어지는 발리는 당연히 그럴 만도. 이대론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한계를 맞닥뜨리고 언니가 내린 선택이 발리였다. 이렇게 다치는 게, 회사에서 아픈 것보단 살만하다며 웃는 언니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많은 이들이 올리브와 비슷한 이유로 발리를 찾아왔으니까.



매일 같이 아침에 요가를 하고 서핑을 하던 요가 부부도 있었다. 6개월간의 발리가 끝나면 속초에서 '요가 홈'이라는 요가원을차릴 거라는 언니는, 역시 남다르게 유연했다. 오빠와 함께 요가하는 모습이 새삼 대단해 보였는데, 심지어 오빠는 나보다 더 유연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여기저기 좋은 요가원을 다녔었다. 또 덕분에 스미냑 쇼핑몰도 구석구석 다녔다고.

힘든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떠나왔다는 오빠는, 서핑만이 국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듯 미친 듯이 서핑을 했다. 덕분에 누가 봐도로컬인 피부색과 서핑실력을 겟한 그. 올리브언니와 마찬가지로 오빠도 언니도 참 잘 웃었다. 눈가가 접히며 웃는 모습이 누가 부부아니랄까 봐, 꼭 닮았다. 그땐, 그게 너무 자연스러웠는데, 한국에 돌아온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언니 오빠의 웃는 얼굴이참 그립다.

 생각해보니 나 빼고 다들 커플이었다. 서핑계의 스승과 같은 에스더와 나낭도 마찬가지다. 현지인 나낭과 결혼해 매일 해변가에 상주하는 에스더 언니는, 얼마나 햇빛 아래 있었는지 자연탈색의 끝판왕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피부도, 자연태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듯 허물을 벗길 수차례였다. 누가 보면 뱀인 줄.

운동을 너무 좋아해서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아프다는 언니는, 누가 봐도 운동중독이었다. 하루에 요가, 헬스, 서핑 다 하는 사람은 에스더 말곤 없을 것이다. 심지어 새벽부터. 글로 쓰니 고되게 들리지만, 언니를 직접 본 이들은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얼마나 행복한 지, 언니의 표정이 말해주니까. 서핑 못해서 어떻게 하냐고 떠나는 날까지 놀리던 언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크하게 고개를 젓던 나낭의 표정도.

발리의 마지막을 함께 지새웠던 두리언니도 빼놓을 수 없지. 얼마나 서핑을 열심히 하던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들과 함께 있으면 나는 차마 열심히 한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우리 중 가장 요리를 잘하던 언니는 직접 담근 김치를 나눠주거나 맛있는 요리, 특히 닭똥집을 해주곤 했다. 발리에서 먹었던 라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라면은 언니가 끓여준 새우탕면이었으니까.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그런지, 참 많이 바다와 닮아있다. 

끝을 알 수 없이 넓은 품,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뚫고 나가는 강인함

그리고 한없이 잔잔함까지. 


오늘따라 참 바다가 그리운 만큼, 그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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