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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May 21. 2018

정치인의 딸

그거 참 쉽지 않다

4년이 흘러 아빠의 재계약이 또 돌아왔다. 안 해본 사람은 많아도 한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던 바로 그 정치다.

이것저것 돌고 돌아 또 무소속. 대한민국 어디서든 무소속이 얼마나 힘든데, 이 힘든 걸 연거푸 하고 있나 참, 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가 누굴 닮아 삶이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떠다니나 했더니, 생긴 것처럼 삶자국도 아빠를 꼭 닮은 게 분명하다.

금요일 퇴근 후 나주행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 지방 정치인의 딸 노릇 참 쉽지 않다고, 아니, 정치인의 가족 노릇 참 어렵다고 툴툴거리며.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 논두렁밭두렁을 뛰어다녔다.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토요일엔 나주 4일장, 일요일엔 영산포 5일장이 서는 날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폭풍같은 주말을 끝내고 지금은 서울행 기차에 올라 출근하는 길, 주말이 오긴 왔나 싶을 정도로 몸이 녹초다.

주말동안 아빠를 엄청 구박했다. 매번 선거철마다 도대체 이게 뭔 난리냐고. 언니도 엄마도 나도 동생도 다 자기 일이 있는데, 도대체 아빠의 정치인이라는 직업은 왜 가족 모두가 짊어져야 하냐고. 정치 안해도 우리 잘 살 수 있지 않냐고.

“혼자 잘한다고 잘되는 거 아니잖아. 더 큰 정치인이 더 큰 정치판을 쥐고 흔드는데, 그 판의 정치새우 주제에 속수무책 끌려갈 거면서. 그렇게 매번 새우등 터지면서 왜 이 힘든 걸 자꾸 하는 거야”

날이 설대로 선 내 말에 아빠는 그저 웃으며 그래, 네 말이 맞다, 할 뿐이었다. 저 말 말고 다른 말을 들은 건 4년 전 무소속으로 나와 당선했을 때가 유일했다.

“그래도 노력하니까 알아주잖어.”

아빠가 그렇게 어린애처럼 웃는 건 처음 봤다. 아빠도 사람인데 거대 정당과 부딪히는 게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를 새벽 4시부터 분주히 돌아다니게 했던 건, 확신 아닌 두려움 아니었을까.

밖에서 험한 말이라도 듣고 오면 아빠는 어김없이 잠꼬대를 했다. 한번은 이제 살만한 지, 허리가 뻣뻣하다는 말을 듣고 온 날이 있었다. 허리디스크로 복대를 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허리를 더 굽히겠습니다.”

웅얼대는 아빠 잠꼬대를 들으며 우리는 애꿎은 가슴만 쳤다. 한동안 아빠는 허리디스크 때문에 하고 다녔던 복대를 차지 않았다. 아빠의 허리가 굽을수록 우리의 마음도 굽었다.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지켜봐주세요.


어제는 장터입구에서 명함을 나눠드렸다. 10년 동안 아빠가 매일 같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명함을 내밀자 누군가 탁 내 손을 쳤다. 바닥에 떨어진 명함을 줍는 내 뒤통수 위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선거 끝나면 남 될 거면서 여기 나온다고 그는 혀를 찼다.

“8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나는 말했다. 울음을 가득 눌러 담으며 웃었다. 저 사람이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관심 갖는 사람도 있지, 얼굴에 침을 맞은 후보자도 있지, 지난 번 선거 땐 무릎도 꿇었는데 이 정도면 양호하지, 스스로를 달래며 시린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빠는 더 한 일을 겪을 테니까.
이건 나 혼자 잘 삭히자.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지금 나 하나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아빠가 그간 삭혀온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 있으니까. 여기서 나는 내가 아닌 정치인의 딸로 존재하는 거니까.


정치? 그거 참 별로인 거 우리 모두 다 안다.


유권자에게 돈 달라는 소리도 들어보고, 담배도 뺏겨보고, 여자가 반바지 입었다고 욕도 듣고, 무릎도 꿇어보고 맞아보고 하면 알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졌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이다.


그래야만 하고 그럴 것이다. 예전보다 홍보물 열심히 보는 사람이 늘었고 지나가다 열심히 하는 거 다 안다며 고생하라는 토닥임도 받으니까.


그래도 12년 전이나 8년 전이나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인의 딸
그거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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