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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May 18. 2018

내가 요가를 하는 이유

고작 내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데

퇴근 후, 팀원과 술 한잔 할까 고민하다 요가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건 세 모금이면 넘길 수 있는 맥주 500cc가 아니었으니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아쉬탕가 수업에 들어서자마자 PINA 선생님은 온몸이 잠길 듯 그윽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비를 뚫고 여기까지 온 것 자체로
이미 여러분은 충분히 강해요.
잘했어요. 


역시, 요가 오길 참 잘했구나.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선생님은 항상 이런 식이다. 밖에선 대수롭지도 않고, 거창하지도 않고 그래서 칭찬이나 선망의 대상도 아닌 일들이 이 공간에선 항상 의미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지난번 수업 때는 브리지 자세에서 어깨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의 대뜸, 칭찬부터 꺼내놓았다. 그걸 들여다보는 것 자체로 잘했다, 고. 몸의 다른 부위와의 연결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선생님은 역시 칭찬으로 말을 끝냈다. 보았으니 다음엔 본 걸 의식하며 움직이면 되니까 참 잘했다고.


여러분이 요가를 선택한 데엔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 이유가 뭘까요?


채 1미터가 되지 않는 폭에서 이리 끙끙, 저리 끙끙하는 이유가 뭘까. 나만 아니면 내 스스로를 힘들게 할 이 하나 없는데, 안달 난 듯 자신을 괴롭히고 또 다독이고 그렇게 뻣뻣한 몸을 바닥으로 기울이는 이유는 뭘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생각했다.



운동광, 이라는 별명답게 이제껏 안 해본 운동이 없었다. 축구, 농구, 테니스, 스쿼시, 탁구, 배드민턴 등 다양한 운동을 거쳐 지금 요가를 하고 있는 나. 퇴근 후 다 쳐져가는 몸을 바로 세우고, 감기는 눈으로 여기 있는 나. 마침내 선생님의 도움 없이 온전히 혼자서 몸을 들어 올렸을 때, 깨달았다. 그게 1mm, 아니 0.1mm일지라도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서는 법을 배울 수 있어서 나는 요가에 온다고. 도구를 잘 다루는 운동을 넘어 나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온다고.


참 번지르르한 말이다. 


매일 잘하는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의 못함을 발견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자세에 집중하기보다 선생님의 디렉션, 혹은 주위를 살펴보는 내가 원망스러운 일인데 참 말에는 그런 번민이 없다. 그래도 항상 마음이 시끄러운 게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과 또 부족한 걸 인정하는 날 칭찬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매일 고통과 원망을 딛고 나아지고 있다고 중얼거리곤 한다.


지금 당장 완성될 순 없다고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다들 다가가기 위해 땀 흘리는 이 순간을 놓칠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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