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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May 22. 2018

정치인의 가족은 서로를 알고 있다

자꾸 만날 수밖에 없으니까

아빠가 정치를 시작하며, 온 가족에겐 그야말로 뉴월-드가 펼쳐졌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은 개인이 아닌, 가족의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재밌는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됐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정치인의 가족들이 서로를 알게 된다는 점이었다.


일요일, 나주 혁신도시의 호숫가에서 명함을 나눠주던 나를 보러 친구가 찾아왔다. 나눠주던 명함은 주머니에 넣고 친구와 함께 카페로 향하는데, 여러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000 후보자 따님이시죠? 어디 가세요?


누구냐는 친구의 눈짓에 나는 다른 시의원의 아내, 아들, 상대 후보의 딸이라고 했다. 카페에 도착했을 때, 친구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물었다.


어떻게 서로 다 알아? 친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선거를 앞둔 지금 출마하는 모든 정치인과 가족들에게는 매일매일이 전쟁터니까. 나 하나 살아남기도 벅찬데 이 황폐한 곳에서 친목을 도모하는 건 상상할 수 없으니까. 


새벽마다 더 좋은 자리에서 인사를 하기 위해 자리싸움이 벌어지는 건 기본, 상대방의 온갖 네거티브를 전해 듣고도, 만나면 좋은 친구, 해야 하는 보살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밤낮으로 쏟아부은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결국 고갈되면 가족끼리도 살가운 말 한마디 오가지 않는데 남의 가족과 친해질 리 만무했다.


그럼 어떻게 아는데?


정식 선거운동이 시작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이번 지방선거로 따지자면 5/31 이전까지 예비후보들은 예비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철처럼 차가 없고 사람들이 노래에 맞춰 춤추지 않는다. 타인이 대신 선거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선거 후보자와 그의 직계존비속, 그러니까 아내나 남편, 자식만 선거운동을 함께할 수 있다. 지난 대선 유승민이 정식 선거운동 이전에 자신의 딸과 함께 유세를 다닐 수 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정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후보자의 가족들은 하루에 최소 서너 번 이상 서로를 만나게 된다. 석가탄신일이었던 오늘은 절에서 함께 부처님에게 공양을 드렸을 것이고, 평소엔 길거리, 시장통, 성당 앞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서로를 만나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좋아?


내 설명을 듣던 친구의 마지막 질문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4년에 한 번, 이렇게 가족모임도 아닌 가족모임 같은 상황에 처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가족 중에 누구 한 명 정치하겠다고 나와서 다 같이 고생하는 건 좀 짠하지만 멀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항상 누군가가 존재하는 건 꽤나 이상한 기분이니까. 그리고 결국에 누군간 당선되고 누군간 떨어지는 이 살벌한 판에서 화목한 인간관계가 싹트기엔 무리랄까.


이거 정치인의 가족은 서로를 알고 있다, 보단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남들은 모르는 참 이상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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