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막 여행

이별과 여행 사이 스위스 04

서방 견문록

by 미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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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하지만 끊임없이 물결을 돌리는 호수의 수면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얀 구름 사이로 깊이를 알 수 없는 파란 구멍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던 그때. 노란 공 하나가 옆으로 지나갔다.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유람선이 지나가는 길을 알리는 공이었다. 퉁- 공을 밀었다. 무거운 돌덩이를 발에 달고 있는 그 공은 다시 되돌아왔다. 가만히 공을 끌어안고 있었다. 미끌미끌한 촉감이 오랜 시기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 공을 붙잡고 있으면 발버둥 치지 않아도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 놓쳐버리면 다시 깊이를 알 수 없는 에메랄드 호수 바닥에 처박히겠지. 한참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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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그 공 너머로 다른 노란 공이 보였다. 이 호수는 가야 할 길을 따라 여러 공들이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 공을 붙잡고 인사했다.


안녕.
저기까지 살아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안녕.
여기 있다고 해서 계속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니까.

그러니 안녕.


첨벙첨벙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 위로 이름 모를 하얀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잔잔했던 호수 어딘가에 파랑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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