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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Oct 24. 2018

좋아하는 사람을 그려보자

그 사람의 눈매 그리고 손짓

보도국에서 일하며 매일매일 사람이 너무 싫었고 또 너무 좋았다. 어떤 화재사건은 말도 안 되는 미친 사람이 불을 놓았고, 어떤 도둑은 말도 안 되는 착한 사람이 자기 짐 내동댕이 쳐가며 잡았다니까. 어떤 범죄는 지나가는 행인 1에 의해 미수에 그쳤고 또 어떤 범죄는 가장 친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니까. 사람을 좋아할래다가도 싫어하게 되고, 혐오하려다가도 사랑하게 되는 이상한 줄다리기를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취미에선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일들을 하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그림 그리기였다.



사람보단 사물
인간보단 자연


사람 없는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에게 느낀 스트레스를 풀었고,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고됨을 잊곤 했다. 그렇게 꼬박 3년을 사람 없이 그림을 그려댔다. 좋은 곳에 앉아 하염없이. 신기하게 그림으로 그리면 사진으로 찍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내 머릿속에 남았다.


기억상실에 걸린 정비공이, 아내도 자식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차를 수리하는 건 기억한다는 사례를 들은 적 있다. 지워지지 않는 작업기억처럼, 손으로 만든 선을 기억하는 거라면 더더욱 사람을 그리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더더욱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래도 싫어할래? 이래도 거리 둘래? 이러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을 하나 둘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리다 보니 또 이게 참 매력적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찾아가는 재미가 생각보다 쏠쏠했다. 그 사람의 눈은 몇 개의 원이 있는지, 미소엔 어떤 곡선이 있는지, 자세엔 어떤 직선이 있는지, 그 사람을 그리다 보면 이제껏 몰랐던 그 사람만의 선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좀 더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을 그려보자. 그 사람의 눈과 코와 입이, 내 말을 듣는 귀와 내 눈을 보는 눈이, 그래서 그 사람이 새롭게 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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