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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Dec 07. 2018

도대체 나는 왜
콘텐츠 제작자로 사는가

루프에 다녀오며

*

며칠 전 '루프'라는 행사에 패널로 참여했다. '콘텐츠 씬에서의 커리어패스'라는 섹션에 참가했는데 새삼스럽게 안도감이 밀려왔다. 사람이란 게 대개 자기 환경 속에서 최극단과 최접점을 찾아내는 데 익숙해서, 만약 내 주변에 미디어 스타트업을 하는 친구가 없었다면, 만약 내 주변에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없었다면, 만약 내가 방송국 신입 공채를 들어가 그 조직에 수긍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면, 나의 세계가 얼마나 좁았을까 싶어서.  반짝거리는 여러 눈을 마주하는 내내 저 사람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얼마나 다양할지 감히 가늠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덜 겸손하게, 내가 아니 레거시의 디지털이 만들어갈 세상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참고로 나의 모든 이력은 '레거시의 디지털'이라는 문장으로 축약된다. 레거시에서 디지털을 한다는 게 누군가에겐 흑색이면서 백색이라는 말로 들릴 테고, 또 누군가에겐 거짓 주제에 진실인 양 구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내겐 희망을 가지고 현실을 살아가는 일이다.



*

질문 중에 '도대체 왜 콘텐츠 제작자로 사는가?', 라는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예상 질문이라 '레거시에서 디지털을 왜 하는가?'를 담아 미리 답변을 준비했는데, 막상 사람들 앞에 서니 입에선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저는 제 생각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또 공감하면 공감받는 대로, 비판하면 비판받는 대로 가다듬어져 세상에 나갈 때, 또 세상에 나가서 대중에게 여러 반응을 얻을 때, 내가 존재하고 있구나, 또 나는 사회의 일부구나,라고 느껴요. 그때 나는 참 잘 살고 있구나, 싶어요."


이건 레거시에서 디지털을 하는 이유도 아니었고, 디지털 업계에 존재하는 이유도 아니었다. 사실 말하면서도 아주 오래전에 가졌던 초심을, 먼지 후후 불어가면서 꺼내 든 기분이었다. 나는 왜 콘텐츠를 만드는가. 그 위에 여러 이유가, 그럴싸한 말들이, 커리어에 도움되는 길로 조작된 스토리가 겹겹이 쌓여있었는데, 그걸 다 털어낸 것만 같았다.


*

루프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각자의 동기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레거시의 디지털에서 내 생각과 내 주변 사람들 나아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접점을 확장시키는 일을 하는 동안, 누군가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다른 방식으로 달려가고, 또 누군가는 다른 목표를 향해 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목표를 향해 다른 방식으로 전진한다. 다들 참 열심히 사는구나. 우리 참 열심히 사는구나.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를 기특해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

지금이 지나면 또 이 시간 위로 겹겹이 세월이 쌓이고, 약삭빠른 눈치가 쌓이고, 사회적인 개인으로서 명분이 쌓일 테다. 하지만 언젠가 이 글을 읽으면서 '왜 나는 이 길을 가는가?'라는 제목의 책더미 속에 가장 밑에 깔린 낱장을 집어 들어야지. 그리고 또 이런 기회에 다른 사람들과 각자의 낱장을 나눠 읽어야지 싶은,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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