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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Oct 31. 2018

JTBC로 이직한다

감사하고 죄송한 알림글

*

JTBC로 이직한다. 이직은 처음인가? 싶었지만 다닌 회사면 여럿. 내가 ‘이직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게 처음이었을 뿐, 새로울 게 없는 일이다. 그런데 마치 처음처럼, 낯설어도 너무 낯설어서 주변에 어떻게 입을 떼야할지 한참을 망설이다 이렇게 글을 적게 됐다.



*

기쁨보단 복잡함이 더 어울리는 마음으로 합격 소식을 전하자 어른들은 ‘단순하게 생각해라, 그저 축하할 일로 여겨라’ 고 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될 것을. 자꾸 엎어져버린 책상 아래 깔린 책더미처럼, 언제 어떻게 엎어져버렸는지 모르는 내 인생계획에 자꾸 깔려버린 기분이 드는 통에 한참을 끙끙 앓았다.


어쩌면 PD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시간이 너무 길어서인지도 모른다. 벌써 12년이 흘렀다. 10년째에 PD라는 직업을 얻었지만, 누군가 부르기 시작하면 PD가 된다는 게 덧없고 부질없고 또한 갑작스러워서,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아니지, 하며 넘겨왔었다. 그런 말들을 삼키며 2년을 보냈다. 계약직, 인턴, 프리랜서, 참 다양한 이름의 계약관계를 경험하던 시기였다. PD가 되고 싶다는 생각 앞에는 어느 순간 단어 하나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정규직 PD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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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이니?


 JTBC에 들어가게 됐다는 말을 꺼낼 때마다 받는 같은 질문에, 자꾸만 말꼬리 흐린 대답을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이지 좋은 일인데 좋은 일이야...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건지, PD였는지, 정규직이었는지 자꾸만 눈앞이 흐려져 사실 사람들의 축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규직이 된다는 건 이렇게 축하받을 일인가. JTBC에선 다른 일을 하겠지만 그 일이 이제까지와 완전히 다르진 않을 텐데 나는 무엇이 달라져 축하를 받고 무엇이 달라지지 않아 축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헤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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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를 받은 만큼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셀 수 없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 스브스뉴스를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곧 수없이 많은 뉴미디어 비정규직 양산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죄책감으로 변했듯, 항상 그렇듯.



특히 괴로웠던 이유는 아마도 나 때문이었다. 그 처절한 아우성 속에서 우연히, 운 좋게, 삶이 내어준 길을 따라온 나. 그 길이 누군가의 등을 따라 난 길인 줄도 모르고, 지 잘난 덕인 줄만 알고, 그렇게 살아온 무례하고 교만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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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합격 소식을 알릴 때마다 자꾸 감사합니다, 라는 말 뒤에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죄송합니다. 저만 또 편한 길로 가서 죄송합니다. 저만 또.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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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있나요? 면접장에서 마지막 질문을 받았을 때 문득 죄책감이 먼저 떠올랐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번 JTBC 채용은, 뉴미디어 인재들에게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쓰고 버려지는 게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으면. 누가 오더라도 그래서 잘했으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코끝이 뜨거워져서 고개를 숙여버린 채, 또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뱉었다.



*

피 묻은 길을 따라 그렇게 이직을 하게 됐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만큼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간절히 되고 싶고, 그래야만 한다.


JTBC에서도,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상사를 힘들게 해도 동료를 힘들게 하지 않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잘못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자신을 되돌아보고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원동력 삼아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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