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막 여행

당신을 몰라도 응원할 수 있을까?

도쿄마라톤 모모응원단의 대장정

by 미뇽

내가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나. 진심으로 진정으로 타인이 원하는 것이 바랄 수 있나. 그런 냉소적인 시선으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는 걸 이번 도쿄 여행에서 깨달았다. 친구를 응원한다는 말이 어색할 만큼 함께한 시간이 짧은 모모를 목이 쉴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응원하기 전까지는 스스로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첫 응원 지점은 25km였다. 스스로 25km를 뛸 생각조차 없는 초보러너한테는 이미 종점과도 같은 아득한 거리였다. 소현이 준비한 깃발을 들고 서있었지만, 입 밖으로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모모를 진심으로 응원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마음을 온 세계 사람들 앞에서 소리 내어 드러낼 수 있나. 거짓말을 할 때, 괜히 사람이 시선을 내리깔고, 목소리가 작아지는 건 그것이 반푼어치도 아닌 말이기 때문이다. 응원이 되나. 나는 모모의 사진이 박힌 깃발을 들고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더기가 지나가는 한국루키 마라토너에게 주먹을 흔들며 외쳤다.


-파이팅!


그러자 그 사람은 잔뜩 굳은 얼굴을 환하게 피고 우리 쪽을 바라보더니, 달리는 주먹을 답장처럼 흔들어 보이며 답했다.


- 파이팅!


마치 더기가 던진 힘을 꼭 잡아 자기 것으로 만들듯, 그는 달려 나갔고 착각일 수 있지만 올 때보다 더 빨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응원에 거짓이 있나.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잘 달려나가길 원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걸음을 제대로 내딛길 바란다. 그게 거짓일 수 있나.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데, 거짓이 있나. 진심이 아닐 수 있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응원하는 데도 이런 마음인데, 모모는 누구보다 고라니처럼 잘 뛰어다닐 사람이 작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뛰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마음을 꼬박 반년간 모아 도쿄마라톤에 나온 그런 모모를 더 응원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이미 앰프를 심장과 폐 사이 어딘가에 박아놓고 온 거리가 터져나가게 '모모 간바레요'를 외쳐대는 소담 옆에서 나는 깃대를 흔들며 다짐했다. 다음 포인트에선 한번 소리쳐보자고.


우리는 첫 번째 포인트에서 모모를 발견하진 못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지나가는 데다가 그 사이에서 아는 얼굴을 포착하고, 또 그 얼굴도 우리를 포착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응원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모모는 42.195미터를 뛰어야 하니까, 그가 뛰는 거리만큼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 다들 모모를 놓쳤다는 걸 깨닫자마자 곧바로 지하 도로를 지나 건너편으로 돌아가 유턴해 돌아올 모모를 만나기 위해 뛰어갔다. 벌써부터 소리를 토해내느라 목이 따갑기 시작한 소담과 아키가 커피를 마실 수 있냐고 물었지만, 이미 긴 발로 휘적휘적 멀어져 출구로 나가고 있는 더기에게 그 말이 닿진 않았다. 더기 다음으로 긴 발을 가진 나는 그 말을 들었지만, 더기의 급한 발걸음에서 이미 답을 알아서 그들에게 안된다는 고갯짓을 보였을 뿐이었다. 출구를 막 뛰어올라 더기와 함께 서서 깃대를 쫙 펼쳤을 때, 더기가 모모를 발견한 듯 먼저 소리를 질렀다.


- 모모 파이팅!!! 모모!!


더기의 시선 끝에 회색 스포츠나시를 입은 모모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더기의 말을 따라 하며 외쳤다.


- 모모!!!!!! 모모 파이팅!!! 할 수 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인파의 행렬 속에서, 무의미한 지친 얼굴들 속에서 갑자기 유의미한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인다. 어릴 적 까만 밤, 수많은 별들 중에서 나의 별자리를 알게 된 이후부터,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 별자리만 보이는 것처럼. 모모는 나와 더기를 발견하고 두 손을 꼭 쥔 채 포효하듯이 우리의 응원을 받았다. 이제 막 출구에서 빠져나온 소담과 소현, 선이, 헵찌, 동인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외쳤다. 모모!! 모모!! 하고. 1-2초의 짧은 순간, 모모의 얼굴을 마주하고, 우리의 응원을 등을 밀어주는 바람 삼아 모모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제 우리도 지하철을 타고 또 다른 1-2초를 위해 달릴 시간이었다.



35km 지점.


모모는 1km를 4분대에 뛰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빠듯하게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지하철역에 도착해 올라가 간신히 자판기에서 보리차를 뽑아 목을 축였다. 다음 앰프를 돌리기 위해 기름칠을 하듯 소담은 꿀꺽꿀꺽 물을 삼켰다. 그리고 출구로 올라가는 데 깃발을 들고 있던 내게 낯선 일본인이 스쳐 내려가면서 말했다.


-간바레요!


응원을 응원받는 낯선 상황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답했다.


-하..하잇!


우리는 모모를 응원하고, 모모를 응원하는 우리를 또 다른 누군가가 응원해 준다. 그래, 응원이란 그저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작은 따뜻한 마음일 뿐이다.


그렇게 올라와 마주한 코스, 나는 뛰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공통적으로 스치는 단어를 보았다. 한계. 몇몇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다 못해 꾸깃꾸깃 구겨진 얼굴로 코스 가운데 가드레일을 붙잡고 다리를 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쥐가 난 것이다.


-한번 쥐나면 계속 나는데. 저 상태로 계속 뛰면 진짜 힘들어


더기는 그들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작년 이미 jtbc 마라톤을 풀로 뛰었다. 괴물 같은 놈.


35라는 위치가 참 숨 막히는 지점이기도 했다. 죽어라 달려왔는데,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어 싶은. 포기하기에는 또 너무 달려온 거리가 많은.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분명히 끝까지 갈 것이다. 그들도 알고 있다. 끝까지 갈 것이라는걸. 동시에 그들은 알고 있다. 앞으로 몸 상태는 더 안 좋아지면 안 좋아졌지, 좋아지진 않을거라는 걸. 그게 참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든다. 안 좋아지는 상황 속에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일은 사람의 얼굴에서 빛을 지워버린다.


그래서인지 코스 가장자리에 붙어서 응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앞쪽보다 훨씬 커졌다. 우리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아직 모모가 오려면 멀었는데, 아키는 달려라 하니의 주제가를 리코더로 불면서 응원을 시작했다. 소담은 또 앰프 전원을 돌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태극기를 얼굴이나 옷에 박은 사람들이나 마리오 코스프레를 한 사람을 보면 파이팅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응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를 앙다물고 뛰어가는, 발을 절뚝이면서도 달리는 걸 멈추지 않는 낯선 얼굴들을 바라보며 울컥한 마음도 있었다.


-할 수 있다!! 갈 수 있다!!! 파이팅!!!


이런 마음이구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가 손에 받아든 하울의 작고 따뜻한 힘찬 심장처럼, 내 안의 어떤 마음을 분명히 만질 수 있었다.



그때 모모가 멀리서 뛰어오는 게 보였다. 가로수 사이로 듬성듬성 몸을 뻗어 서있던 우리는 모모를 향해 포효하기 시작했다. 모모는 달려와 소현에게 잠시 안겨 기댔고, 우리는 환성을 지르며 모모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모모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지쳐 보였다. 그런 그에게 힘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그가 떠나고 나서 우리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이 우리의 열성적인 응원을 한참 바라볼 정도였다.


이제 마지막 응원 포인트. 결승점 1km 전.


작년에 더기와 선이와 함께 10km 마라톤에 나갔다. 처음 나간 마라톤이었고, 10km를 뛰는 것도 처음이었다. 더기와 선이를 만나지 못해서 혼자 페이스 조절을 하며 뛰느라고 심박수 120-130 사이를 유지하면서 뛰다가 9km 지점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더기를 발견했다. 이미 더기는 결승점에 도달해 날 마중하러 나와있었는데, 그가 이제 1km 남았으니까 다 끌어내서 뛰어도 된다고 했을 때, 나는 정말 심장이 혀끝에 매달릴 때까지 달려나갔었다. 곧 끝이라는 안도감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다리에 마취제를 놓은 것처럼 달콤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나, 더기에게 응원을 받았다.


역시 도쿄마라톤 결승점 last 1km 표지판을 본 러너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났다. 누군가는 양손을 흔들며 응원해달라는 듯 달려나갔고, 이미 환호성을 지르는 러너들도 있었다. 이제 응원하는 사람들도 모두 너나 할 거 없이 모두를 응원했다.


-라스토!

-유캔두잇!

-파이팅!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모모 또한 달려나갔고 그는 3시간 20분이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마라톤을 완주했다.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했던 날이었다. 응원하는 나를 스스로 꽤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모모는 응원해 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모모와 소현, 더기, 소담, 아키, 헵찌, 동인 덕분에 더 좋은 내가 된 것 같아 고마웠다.



언제든 이렇게 응원하는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는 나로 살고 싶어졌다.


다들 항상 달리고 있다. 각자의 목표를 향해서.

42.195km 더 많은 거리를, 더 오랜 시간 동안 가고 있다.

분명 나도 내 길가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응원받고 있고, 나도 그 사람들의 길가에 서서 응원하고 있다.


더 크게 알려줘야지. 파이팅이라고.

더 많이 말해줘야지. 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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