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막 여행

파리의 미뇽특파원

다시, 유럽

by 미뇽

1. 파리 도착

여행은 나를 하잘 것 없는 존재로 만든다.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력한, 그래서 남에게 손을 벌리거나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도록 나를 구석으로 내몬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난 여행이 좋다. 모든 부분에서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한 시점에서부터는 여행을 사랑하게 되었다. 매 순간, 겸허해지고 겸손해지는 것.

또 여행을 왔다.

손끝에는 거만함이 배였다. 천성이란 이토록 끈질기다. 입꼬리에 스며든 오만함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면 한 번씩 뜨거운 태양 아래 다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파리에 왔다. 이번엔 또 어떤 것을 비워갈까.

삶. 그것은 그저 살아내기에 너무나 아쉽다. 삶, 끈질기게 나를 괴롭혀야만 비로소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버티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나는 여행을 왔다.

2. 나는 그동안 무엇을 기다려왔다.


특별한 무언가를 기다리던 버릇의 시작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매일 조용히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고, 어린 나는 부엉이를 기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그와트 입학 편지를 가져올 부엉이를, 내가 평범한 머글이 아니라는 걸 입증해줄 부엉이를 기다렸다. 해리 포터부터 시작된 기다림은 트와일라잇 때는 나를 뱀파이어로 만들어줄 뱀파이어에 대한 기다림으로, 비포미드나잇 때에는 셀린느와 제시 같은 영원의 짝으로 이어졌다. 가장 마지막으로 기다렸던 이는 미드나잇 인 파리, 푸조 뒷좌석에서 손짓하던 헤밍웨이였다. 비 오는 파리에서 차창을 내리고 어서 타라며 손짓하던 그의 모습이 항상 눈에 선하다. 그렇게 나는 그동안 무엇을 기다려왔다.

헤밍웨이의 손짓을 받던 그 성당 계단에 앉은 지금, 나는 이제껏 내가 기다려왔던 무엇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법사보다 못난 머글, 늙어가는 인간, 천박한 현대인에서 탈출. 그 무엇은 모두 현실로부터의 탈출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물다섯, 스물여섯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나는 더 이상의 기다림이 최종적으로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걸 잘 안다. 현실적이라는 말을 현실 타협적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받아들이며 얻게 된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기다리지 않는 것일까. 등 뒤의 문에서 미사를 본 사람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영화처럼 한 밤 중도 아니고, 비가 내리지도 않고, 마차를 닮은 푸조가 아닌 회색 타원형의 푸조가 씽 하니 지나간다.

나는 여전히 무엇을 기다린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무엇을 기다린다. 출발선에 서서, 내 안의 종이 울리고, 지면에서 떨어져 크게 내딛을 발걸음을 기다린다. 나 자신이 아닌 그 어떤 이도 나를 현실타협적 인간으로부터 구제할 수 없다.


3. Cafe Magots

헤밍웨이가 자주 왔다던 카페 마곳에 왔다. 1664 25cl 이 만원이라니, 하지만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 맥주를 먹어야 하지 않나. 이러려고 온 거지. 밤에는 와인 한 병을 들고 에펠탑에 가야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헤밍웨이는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뿐이다. 생각해보면, 헤밍웨이가 이곳을 자주 온 결정적인 이유는 여기가 좋아서가 아닐 것이다. 생제르망데프레의 중심부에 놓인 탁월한 위치의 마곳에 친구들이 모였겠지, 그 친구들과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했을 그가 그려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가 자주 왔다는 이유만으로 카페 마곳에 앉았다. 오전에 갔던 카페는 에스프레소가 2유로였는데, 여긴 4유로가 훌쩍 넘는다. 세상을 얇게 보며 생기게 된 허세와 허상의 대가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생각이 없다. 얕은 물은 속이 뻔히 드러난다. 우리는 그걸 ‘맑음’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장소에 온다고 내가 중요해지거나,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내가 대단해지지 않는다. 스스로 중요해지고, 스스로 대단해져야 하는데, 남으로 나를 채우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라 자꾸 눈길이 간다. 하지만 명심하자. 카페 마곳에 앉아 맥주를 홀짝댄다고 해서 내가 헤밍웨이가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난 헤밍웨이의 문체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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