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
또 떠난다. 집을, 가족을, 회사를, 일상을.
애초에 역마살을 타고난 걸까 아니면 정착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가 체질에 맞았던 걸까. 돌이켜보니 내 삶은 떠남의 연속이다. 회사와 나라를 떠날 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어느 곳 하나 정착하지 못한 채, 시간의 강물을 따라 떠내려온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가족과 집, 유년시절의 상징이었던 나주를 떠나오던 그때, 방랑은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항상 정착을 꿈꿨지만, 정작 스스로가 정착과 맞는 인간인지 고민해본 적은 없다. 한 해, 한 해 나 자신과 마주 볼수록 고개를 젓는다. 정착은 내게 정체의 다른 이름이다. 정착해야 한다는 말을 의심 없이 믿었던 어린 나는 없다.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어떤 일로 정착하라, 삶의 의무처럼 주어진 문장에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왜 정착해야 하는가.
현재의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떠난다.
돌아온 후에 이어질 삶에 대해 묻는 사람이 많다. 나는 그 질문에도 답하지 못한다. 어느샌가 인생에는 원래 답이 없다는 말이 변명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예전엔 절대 하지 않았던 말들을 이제는 항상 하게 된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는 떠난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거창할 것도 없다. 떠나지 않고선 살 수가 없으니까. 솔직히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힘들고, 버겁다. 타협 같은 것. 눈 한 번 감아버리면 그만 아닌가. 그 눈을 한 번 감지 못해 떠나고, 또 떠나고.. 다시 떠나고...
그래서 여행이 좋은 거겠지. 떠났다가 떠나는 것.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지금, 나는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생각한 것보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