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0
남은 날을 알리는 숫자가 50에 멈춰 섰다. 50일 뒤 작년 1월부터 일해온 회사와 헤어진다. 100일이 남았을 때부터 시계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90일이 남은 날, 나는 파리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회사인이 아닌 인간으로 사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남은 날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로 한 것은 5월 9일의 밤이었다. 하루를 세면 하루가 더디게 간다. 느리게 움직이는 시침이 회초리처럼 나를 때린다. 집에 돌아가 종아리의 붉은 줄을 세며 드디어 하루가 지나갔다고 숨을 내쉰다. 지난 50일이 딱 그랬다. 출근길, 다가올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었고 퇴근길 겪어낸 고통에 침을 탁 뱉었다. 나는 이 회사를 참 사랑했는데, 어쩌다 우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헤어질 연인들의 눈빛처럼 증오와 한 티스푼 정도의 애정이 남았다.
그날 밤 나는 보드라운 보랏빛 이불에 파묻혀 암에 걸린 아내를 둔 남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새로운 사람이 생겨 이혼하려 한 순간,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 남편은 딱 그녀가 사는 순간까지만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한다. 사랑스러운 눈빛과 손길, 목소리와 몸짓을 흉내 내며. 그런데 어느새 그는 죽어가는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
남은 50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녀볼까. 즐거운, 좋은 이야기들을 써내려 볼까. 나는 되뇌었다.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