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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Nov 20. 2016

나는 너를 위로할 수 없다

분명 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괜찮아.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도 괜찮아. 엄마는 너만 행복하면 괜찮아.”

수화기 너머로 엄마는 말했다. 건강했던 내가 자꾸 아픈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엄마는 편하게 생각하라고 나를 토닥였다. 엄마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엄마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거야”

그 때 나는 엊그제 들었던 네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삶 속에서 담담하게 웃던 너를 떠올렸다. 너는여태껏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그 어떤 사람도 너가 살아내야만 했던 시간을 견딜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할만큼. 


그런 네가 내게 요새 어떻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의아했다. 너는 내게 물어보는 게 아니라, 네 자신에게 물어봐주길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나는 요새 괜찮지 않아”

그 말 뒤로 네가 얼마나 참아왔을 지조차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꺼냈을 때, 나는 막막했다. 옛날 같았다면, 괜찮아, 잘될거야, 걱정 마, 내가 있잖아, 무책임한 위로 몇 마디를 건넸을텐데, 이제는 그딴 값싼 위로가 널 더 힘들게 만든다는 생각에 목이 막혔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빛으로 웃고 있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저 슬픔을, 힘듦을, 절망을 꾹꾹 눌러왔을까, 나는 그 때 네 눈빛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럴 땐 우는 거라는 내 말에 너는 웃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나는 너의 그 말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꾸 네 슬픈 웃음이 눈에 선해서, 그 웃음 섞인 네 얘기가 귓가에 맴돌아서, 그런 네게 건네지 못했던 반쪽짜리 위로가 목에 걸려서, 나는 그 날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나는 어떤 말로도 너를 위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알고 지내온 시간 따위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 가족 정말 열심히 살면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끝을 삼키는 너를 보며, 나는 이 세상에서 네가 걷고 있을 어딘가를 가늠해보려 했다. 하지만 내 세상은 너의 세상과 너무 달라서, 나는 도무지 비슷한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또다시 나는 어떤 말로도 너를 위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겐 감히 너를 위로할 자격이 없었다.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이해관계 없는 사이, 순수한 관계를 믿던 시절이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라는 말에 드라마도 결국 현실에서 나온 얘기라고 따지던 때가 있었다. 결국 조건이 비슷한 사람 만나서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고, 가족이 되더라는 말에, 옛날 사람들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 흘려 듣던 시기가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사람을 그저 사랑할 줄만 알았던 나는 인간관계라는게, 인생이란 게 그저 좋아하면,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줄 알았었다. 아마 너도 그러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면 뭐든지 쉬워질 것 같았다. 기술처럼 사는 데 숙련되서 삶을 능숙하게 살아갈 줄 알았다. 너도, 나도, 그렇게 사는 기술을 익히고, 나중엔 눈감고도 잘 살 것만 같았다. 그렇게 훗날, 우리는 탑골공원에 바둑 두는 늙은이들이 되서 늙는다는 게 이런 거라고 껄껄거릴 줄만 알았다. 서로 다른 공간, 다른 시간, 다른 사람에 둘러쌓여 살아왔지만 이제는 함께하니까, 우리는 만났으니까, 같아질 일만 있는 줄 알았다.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처럼 정말 그럴 줄만 알았다.

그 때의 나는 참 순수했다.

너와 내가 절대 비슷해질 수 없다는 걸 모를만큼.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세상엔 같은 사람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출발점이 같은 줄 알았는데, 출발점만 같은 거였다는 걸, 심지어 그것은 출발점도 아니었다는 걸. 그렇게 너와 나 사이엔 우연히 한 시점을 공유했다는 것 말고 어떤 공통점도 없다는 걸.


분명 너는 나보다 먼저 알았을 것이다.


나는 너와 친구지만,

나는 너를 너무 좋아하지만,

그래서 나는 세상이 너의 삶을

그만 괴롭히기를 누구보다 바라지만,

나는 도무지 너를 위로할 수 없다. 어떤 말로도 나는 네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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