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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Nov 20. 2016

꼰대가 꼰대에게

어쩌다 꼰대

아재, 꼰대, 개저씨 등의 말이 세상에 널리 퍼지면서 어른들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갑자기 말을 하다가 멈추곤 다들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방금 나 꼰대 같았니?”

 그 질문을 하는 어른들은 여자, 남자를 가릴 것 없이 우리의 얼굴을 살핀다. 네, 라고 하면 어쩌지, 그렇다고 하면 어떤 다른 방식으로 말을 해야 할까, 자신이 꼰대 같냐는 질문 뒤에서 어른들의 여러 생각이 드러난다.

사회라는 곳에 발을 들여놨을 때, 나는 몇가지 말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걸러들어야 한다는 걸 빨리 알아차렸다.  ‘요새 젊은 것들은 말이야’라거나, ‘내가 왕년에 잘나갔는데’라거나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와 같은 말들.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처음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내가 어린 탓에 어쩌면 저 사람 말대로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저 사람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저렇게 살아보지 않았으니 저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 저런 어구로 말을 시작하면,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다. 스스로 더이상 어리지 않는 나이가 되면서, 혹은 나를 동등한 입장에서 대하는 다른 어른들을 만나게 되면서 생긴 변화다. 저 사람도 내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는데, 왜 이런 얘기를 듣고 있어야만 하나,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꼰대가 싫었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내 안에도 저런 꼰대가 자리잡고 있다는 걸, 알아가면서 생긴 변화다.


인간이란 게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는 후해서, 자기가 살아온 시간을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게 타인에게 관심받을 일이 적어서, 스스로 얘기를 하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또 남들을 도와주고 싶으니까 자기의 잘 산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이란 게 칭찬을 좋아해서 그런 잘 산 이야기들을 들려줬을 때 칭찬도 받고 싶은 게 당연하다.


나도 그렇다.

그러니까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내 안의 꼰대와 마주하면서 나는 괜찮았다. 꼰대 예방주사처럼, 내 안의 꼰대는 내 밖의 수많은 꼰대를 이겨낼 수 있게 했다. 그들의 꼰대질이 악의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아서, 몇 년 더 살아본 사람으로서, 정말 순수하게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잘 알아서 괜찮았다. 그렇게 나라는 젊은 꼰대는 무수히 많은 늙은 꼰대를 견뎌냈다.


어쩌면 꼰대라는 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노화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도, 올해에도, 내년에도 사냥하고 농사짓는 사회에서 어른들의 말은 삶의 교과서였을테니까. 만약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만의 꼰대 본능이 있다면, 이해못할 것도 아니었다.


꼰대질을 하는 꼰대와 꼰대질을 하지 않는 꼰대로 이루어진 세상. 그들은 세상을 조금 더 살아온 꼰대일 수도 있고, 한 분야를 조금 더 알고 있는 꼰대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 고학번인데다가, 회사까지 갔다 돌아온 나처럼 주변의 파릇파릇한 학생들 속에서 상대적 꼰대일 수도 있다.

그렇게 애초에 우리 모두 꼰대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어쩌다 꼰대를, 더 아는 사람이, 자기 기준에서 덜 아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싶어하는 선의로 가득한 꼰대질이 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되어버렸을까. 문득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이 도태되는 과정을 떠올렸다. 매일 변하는 환경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 나의 삶을 강요하기엔 우리 모두는 각자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도를 넘은 꼰대질까지 포용할 수는 없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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