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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Nov 27. 2016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4년제 공무원이라 쓰고, '정치인'이라 읽는다

가끔 누군가 부모님의 직업을 물으면, 나는 두분 다 공무원이라고 대답한다. 이 말은 사실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말이다. 실제로 어머니는 30년 차 프로 공무원인데, 아버지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참반거짓반으로 이루어진 대답을 하는 이유는 첫 째, '정치인'이라고 하면 댑시 색안경부터 쓰고 보는 사람 때문이요, 둘 째, '정치인'이라고 하면 엄지부터 척 내밀고 보는 사람 때문이요, 셋 째, '정치인'이라고 하면 마치 입 속의 혀처럼 굴길 바라는 이들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정치인'에게 우호적이지 않지만, 우리집만큼 우호적이지 않은 가족은 또 없을 것이다. 아빠는 우리 집에서 실제로 '계약직 공무원' 취급을 받는다. 엄밀히 말하면 나주 시민과 계약한 4년 계약직 공무원이랄까.


아빠가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나를 각종 이름으로 부른다. 권력의 후계자라거나 지방 호족의 자식이라거나, 금수저와 같은 말들이 나를 따라다닌다. 이제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저 웃는다.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왜 내가 웃는지 잘 알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권력의 ㄱ자도 관심이 없다. 요즘 세상에 지방 호족이 웬 말, 금수저가 되려면 우선 이번 생에는 틀린 것 같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나를 좋게 봐주는 거라고 했다. 흙수저로 보이는 것보다 금수저로 보이는 게 좋고, 권력의 후계자가 가난의 후계자보다 낫고, 지방 호족의 자식이 그냥 자식보단 훨씬 괜찮다고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아닌 우리 가족은 사실 아버지가 정치인이어서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게 더 많았다. 부자도 아니고, 중산층이 될까말까한 집 상황에서는 정치라는 게 명예 아닌 멍에였다. 첫 선거에서 떨어진 아버지는 우리 얼굴을 보기 힘들어 매일 밖으로 맴돌았고, 우린 아버지의 힘듦을 같이 짊어져야 했다. 이후 성공한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위 친구들이 자꾸 걸러졌다. 의도한 건 아니였다. 아버지에게 적이 생기면 내게도 적이 생겼다.


그밖에 힘든 건 참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가장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체화될만큼 많이 해야만 했다. 얼마나 익숙해졌냐면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총선, 아버지 선거운동을 하고 다니던 때, 과수원에 찾아가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고작 인사 정도로 되겠냐고 했다. 이 말 뒤엔 여러 의미가 있었다. 나는 그 말에 넙죽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했다.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었다.


머리가 크면서 아버지의 직업이 정치인이라서 좋은 점을 차차 알게 되었다. 취업 청탁이나 부정 입시 같은 대단한 일은 아니다. 아주 소소한,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들이다. 우선, 집에서 정치에 대한 토론이 수시로 이루어졌다는 것.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 어릴 적엔 그게 곧 정치에 대한 얘기라는 걸 몰랐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가족의 정치친화력은 굉장히 다. 또한 각자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가족 내에 조성되었다. 이는 아버지와 자식 관계 말고도 유권자와 후보자라는 관계 덕분이었다. 어떤 가족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인데, 자식이 갑이 되고 부모가 을이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정치인이라는 아버지의 직업은 가족을 따로 생각하는 개인으로 성장시켰다. 그 말은 서로의 견해가 일치할 때는 또 같이 하나가 된다는 걸 뜻한다.


오늘처럼 말이다. 제주에 있던 아빠와 나주에 있던 엄마와 서울에 있던 우리가 광화문에서 만났다. 서로 같은 생각을, 서로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항상 우리의 생각을 물었던 아버지가 없었다면, 아버지로 하여금 우리에게 생각을 물어보게 만든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없었다면, 이런 오늘이 있었을까.


나는 오늘 아버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의견이 있다면 표현해야 한다는 걸 몸소 보여주던 정치인 아버지. 남들은 정치란 게 더러운 거라고 손가락질하고, 우선 까고 봐야지 하면서 욕부터 시작하지만, 나는 참 그 더러운 판에서 어떻게든 바꿔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아버지가 대견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고 모두가 피하면 똥은 누가 치우나. 나는 정치인 아버지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처음으로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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