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계절'
남해에서는 버스를 타는 것부터 생소하다. 우선 버스카드라는 개념이 없고, '이번 정류장'으로 시작해 '다음 정류장'으로 끝나는 방송이 없다. 남해의 시외버스는 뒷문도 없다. 오로지 앞문으로만 사람을 싣고 내린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 앉아 오가는 대화를 듣는다. 분명 우리나라말인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여기 참 좋은 곳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끔 답답함에 가슴을 칠 때가 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과 마주할 때가 그렇다. 세상에 똑같은 인간 없다지만 도대체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끙끙 앓곤 한다. 그 고민의 흔적들과 우리는 지하철에서 마주한다. 핑크색 임산부석이나 노약자석을 볼 때마다 굳이 이렇게 해야하나, 생각했다가 이렇게라도 해야지, 중얼거린다.
남해 시외버스엔 노약자석이 없다. 임산부석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노약자석이 있고, 임산부석도 있다. 지팡이에 온 몸을 기댄 할머니 한 분이 버스에 올라탔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있던 아저씨 한 분이 슬며시 일어나더니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버스에 온전히 올라선 할머니가 허리를 한 번 쭉 피고 그 자리에 앉는 순간, 그 자리는 노인석이 되었다. 핑크색 캐릭터 신발은 신은 여자아이와 엄마가 올라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앞쪽에 앉은 사람들은 슬그머니 일어나 뒤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의 배려는 상황에 맞춰 새로운 좌석을 만들어낸다.
모두가 배려를 하는 세상에선, 굳이 어떤 좌석을 핫핑크로 칠하지 않아도, 저 구석에 따로 떼어놓지 않아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다. 이 곳, 참 좋다.
평산 2리 내릴 사람 없어요?
아저씨의 목소리가 우악스럽게 생각을 비집고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린 나를 반기는 건 마을 앞 큰 돌덩이였다. 마을 이름이 박힌 돌 뒤의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새하얀 게스트하우스가 코앞이다. 바다 이름으로만 알던 남해를, 하나의 도시로 알게 된 건 '생각의 계절'이라는 이 게스트하우스 때문이었다.
생각의 계절에서 밥을 얻어먹는 얼룩소 고양이들은 어김없이 문 앞에 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휙- 고개를 돌려 수풀 속으로 사라렸다. 그 때, 바람이 불었다. 나무 문 앞에는 대나무 숲이 있다. 검정색과 초록색 사이 어딘가에 있는 대나무 숲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해진다. 여기까지 오면 나는 정말 서울에서 멀리 왔구나, 내게 고통을 주던 그 모든 것으로부터 비로소 멀어졌구나 싶다. 대숲 흔들리는 소리에 눈을 감았다. 왜 이렇게 좋은 소리를 쏴아아 쏴아아 하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걸까. 문을 열자 종이 딸랑거렸다.
다음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