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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Dec 01. 2016

인턴 제안만 10번 째

공개적으로 거절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는 게 뭔지 정도는 알고 있다고 믿었다. 새파랗게 젊은 것이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 취급을 받을 때에도 사는 게 뭔지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삶인데, 내가 가는 길인데, 내가 선택하는 건데, 당연히 사는 게 뭔지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나는 요새 의문이 든다. 정말 산다는 건 뭘까, 내가 가는 이 길이 정말 믿고, 생각하고, 확신했던 그 길이 맞는 걸까. 도통 알 수가 없다.

 요새는 인턴이라는 말만 들으면 화부터 난다. 선심 베풀 듯 받은 인턴 제안만 열 번이다. 서류는 그냥 통과시켜 준다는 말 뒤에는 이런 특혜 없고, 이런 기회 없고, 이런 자리 또 없다는 말이 따라 붙는다. 정규직 전환은 장담할 수 없지만, 네가 열심히만 한다면, 이라는 말도 따라 붙는다.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가증스럽다.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는 사람도, 아직까지 저런 말을 들어야 하는 나도, 우릴 이렇게 만든 상황도 모든 게 다. 그들은 거절하는 내게 초심을 잃었다고 했다. 나는 초심을 잃은 게 아니라고 했다.


더 이상 처음이 아니니,

초심이란 게 애초에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처음 인턴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 때, 나는 산다는 게 가끔은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 하고, 온 힘을 다해 매달려보기도 해야 하고, 또 어떨 땐 뒷걸음질도 치고, 쫓기듯 내리막길을 굴러야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게 툭툭 먼지 털고 일어나보면 어느새 시작점에서 멀리 떨어져있을 거라고 기쁜 마음으로, 최대한 힘을 내서 일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스브스뉴스다. 열 명의 인턴 모두가 열심이였다. 그 때의 그 인턴들은 어디로 갔을까.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 힘겹게 올라가고,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간신히 매달리고, 부끄러워하며 뒷걸음질치도 치다가, 두려움에 도망치듯 굴러내려왔는데, 왜 나는 여전히 제자리인 걸까. 도대체 왜 아직까지도 인턴을 하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걸까. 열심히 제자리에서 쳇바퀴만 돌리다가 지쳐쓰러진 쥐새끼가 된 기분에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앞으로 조금은 나가도 되는 거 아닌가?
노력했으면 조금은 무언가 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여전히 제자리인 건 정말 이상한 거 아닌가?

이렇게 제자리걸음 하는 줄 알았다면, 산다는 게 이런 건 줄 알았다면 그토록 열심이진 않았을텐데. 공허해진 마음을 물음표로 채워보지만, 부질없다. 내가 열심히 산 걸 내가 아는데, 자꾸 밖에서 오는 답은 그걸 부정하게 만든다. 그 탓에 나는 나조차 믿지 못하고, 내 노력과 내 열정과 내 모든 것을 믿지 못하고, 이리저리 온갖 바람에 나부낀다.

나는 정말 산다는 게 뭔지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산다는 게 먼지는 묻어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고, 잘 살 자신은 없어도 못 살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왔는데, 그래서 온 몸에 힘이 빠진 채로 일어서면서도 조금이라도 앞으로 한 발자국 움직였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나는

산다는 게 이런 건지는

꿈에도 몰랐다.


산다는 게

힘겹게 제자리를 걷는 건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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