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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Dec 16. 2016

누나, 여자로 사는 건 어때?

남동생은 물었다.

하나뿐인 남동생이 연애를 시작했다. 무려 첫사랑이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고,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댄다. 어느 정도냐면 막 잠에 든 나를 깨워 자기 연애 얘기를 한다. 자랑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나 뭐라나. 같이 사는 누나 입장에선 한 편으론 기쁘고 한 편으론 짜증스럽다. 동생이기 전에 아주 꼴보기 싫은 커플이다.


동생은 이런 느낌 처음이라 신기하다며,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 놀랍다며, 날아갈 것 같이 행복하다며 호들갑을 떤다.그럴 때마다 나는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는 몸을 틀며 찬물을 뿌린다.


'원래 사랑이라는 게 시작할 땐 비슷한 점만 보이고,

헤어질 땐 다른 점만 보이는 거야.

너만 하는 거 아니니까 진정해.'


그런데 오늘 아침, 동생의 표정은 평소같지 않았다. 놀라움이 짜증과 분노와 온통 뒤섞인 느낌으로 동생은 씩씩거리며 물었다.


누나, 여자로 사는 건 어때?


정말 뜬금이 없다. 막 잠에서 깬 누나에게 묻기엔 아주 이상한 질문이다. 사람의 생각엔 모두 저마다의 계기가 있다는데 얜 이렇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기 위해 어떤 계기를 지나온 걸까. 나는 침묵했다. 동생은 곧장 입을 열었다.


여자친구가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줬는데,

여자들은 그런 일을 겪으며 살아왔던 거야?


기승전 사랑이다. 아주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나셨다. 동생은 길에서 번호를 달라며 여자친구를 집까지 따라온 남자, 학과 내에서 여자친구가 들어야 했던 성희롱의 대화들에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여자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미쳐버릴 것 같다고 했다.


그런 놈들은 왜 사는 거야?


동생이 열변을 토할수록, 그의 말이 뜨거워질수록 나는 차가워졌다. 사랑을 계기로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 동생이 기특했지만, 동시에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동생이 한심하기도 했다. 이제라도 생각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나. 마음이 무거워졌다.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 저번에도 했었다.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한 수업이 막 끝난 후였다. 고정관념의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여러가지 고정관념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다중 소수에 대한 수업이었다. 스스로가 다중 소수라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 소수의 한 갈래는 바로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주변에 앉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무겁다며 말을 했는데, 옆에 앉은 남자가 굉장히 흥미로운 생각이라며 말을 받았다. 자신은 서울에서 태어난 남자라서 한번도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없었다고 했다.


괜찮아 네 문제라고 못 느껴서 그래.


나는 그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이란 게 원래 이기적인 존재라는 걸 잘 알고 있다가도, 막상 딱 그 사실과 마주치면 마음이 얼얼하고 그렇다.


누나, 여자로 사는 건 어때?


동생 질문에 마음이 무거워진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자신의 가장 큰 스펙이 남자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이 정도로 착잡하진 않았는데...


살 맞대고 살고 있는 너에게까지,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들어야 할 정도로 우리는 다른 곳을 살고 있구나.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도무지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건지 네게 이해시킬 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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