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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Dec 23. 2016

치킨또라이

치믈리에 미뇽입니다

 2년 전, 이색동아리나 최신 트렌드, 요새 젊은 것들의 취미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동아리가 있었다. 치킨동아리 피닉스다. 그 중 치믈리에, 치킨 + 소믈리에 라는 이름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나다.

치믈리에. 무슨 치킨 또라이 같은 소리 하고 있다고 웃고 지나갈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치믈리에가 되면서 꽤 많은 대형 프랜차이즈와 일하게 되었다. 굽네치킨이 우릴 위해 만든 치믈리에 자격증은 나를 국내 4호 치믈리에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선점효과인가.


여러가지 기억 남는 것 중 두 가지만 뽑아보자면 먼저 많은 치킨 신제춤 출시에 관여했다는 것. 가장 기억남는 건 BHC 뿌링클이다. 지금은 치즈치킨 계의 명실상부 안방마님이지만, 사실 뿌링클은 출시되지 못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당시만 해도 치즈와 치킨은 멀고도 가까운 사이여서 디핑소스로는 존재하지만 치즈범벅의 치킨을 그리기엔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지금 와서는 '치즈와 치킨 조합이면 당연히 성공하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때만 해도 누구도 성공을 얘기할 순 없었다.


게다가 치킨 출시의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로, 치즈를 주로 와인 안주로 접하던 세대. 맛만큼 직관적이고 경험적인 감각이 또 없는데, 아무래도 치즈치킨이라는 게 다가가기엔 어려운 점이 많았던 것이다. 치즈맛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맛없는 걸 맛있다고 설득하는 건 도무지 어려운 일이다. 취향차이만큼, 이해하기 쉬우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없다. 그래서 실제 연구팀은 도대체 이게 어떤 맛이냐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로 뿌링클 출시의 길은 험난했다. 


그 때 BHC는 내게 물었다.


뿌링클
성공할까요?


BHC 본사까지 가서 뿌링클을 맛봤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빨랐을, 어쩌면 마지막이 됐을지도 모르는 그 뿌링클의 한 입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분명 성공을 확신하다는 메시지더불어 치즈가루의 특성상 순살 메뉴 추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결과는 알다시피 아주 성공적이었다.


프랜차이즈 업계 뿐만 아니라 각종 방송에도 얼굴을 비칠 기회가 있었다. 사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치킨을 좋아해서  치킨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게 이상하다고 했다. 치킨에 대해 진지할수록 사람들은 웃었다. 이상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치킨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려면 아직도 수줍다. 여전히 치킨이 너무 좋다. 요새는 소소하게 일상에서 치킨결정권을 갖는다거나 신메뉴는 꼭 시식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나만의 치킨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치킨 좋아하는 데 이유 있나 싶다가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세상에 더 맛있고 덜 맛있는 치킨은 있어도 맛없는 치킨은 없다는 것. 사람 같지 않나. 또 그런 사람들은 치킨 하나로 모일 수 있었다는 것. 치킨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다양한 인간군상을 치킨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언제나 치킨은 위대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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