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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Dec 28. 2016

심리학과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궁예가 되었나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말하면 으레 그럼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냐거나 내가 무슨 생각하는 지 맞춰봐 같은 말들을 듣는다. 우리를 정말 궁예로 아는 걸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초롱초롱 눈을 반짝인다. 때론 심리테스트나 더 나아가 자신의 MBTI 결과를 분석해달라는 말도 듣는다. 거의 인간 봉봉 취급이다. 그럴 때면 나는 심리학은 그런 미신을 터부시하는 과학이라는 말부터 사람을 어떻게 16가지로 나눌 수 있냐는 말까지 다양한 답변을 내놓는다. 하지만 심리학에 대한 흔한 고정관념은 도무지 뿌리뽑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심리학과 사람들과 있다보면 가끔 나도 정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고, 친구가 아닌 상담자와 내담자로 마주 보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남들은 분류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사람들을 분류한다거나 성격의5요인으로 분석하는 일들도 간혹 벌어진다. 괜히 전공 탄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연말이라 그런지 부쩍 심리학과 사람들에게 연락이 자주 온다. 선배들, 친구들, 후배들. 한동안 뜸하던 채팅방이 활발하다. 그런데 그 중 몇몇 이들이 뜬금없이 내가 걱정된다고 말한다. 나는 어떤 감정도 그들에게 털어놓은 적이 없는데, 그들은 나의 감정단서를 캐치해 먼저 말을 건다.

요새 내가 쓰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극단적서술이 늘었다고,

그래서 너가 괜찮은 지 궁금해졌다고.


스크롤을 내리다가 그냥 마음이 따뜻해졌다. 힘들어, 말하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 요새 힘들지, 말하는 사람들. 우울해, 얘기하지 않아도 요새 많이 우울한 거 같아, 라고 마음을 다독여주는 사람들. 생각해보니 심리학과 사람들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독심술을 쓰진 않지만 사람에 대한 관찰력이 일반인보다 뛰어난 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아는만큼 보이는 거니까. 사람에 대한 분석력도, 하나의 말이나 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량도 남들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에 대해 배우는 우리가 남들보다 조그마한 변화를 쉽게 알아차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최근엔 심리학과 사람들과 심리학을 전공한게 축복이자 저주라는 주제의 대화를 했었다. 많이 아는 건 좋은 거니까. 사람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기대를 버리는 법도 알았다. 행복하기 위해서 미움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게 자신에겐 힘든 길일 수도 있다고.


그런데 이상하다.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고통스러졌다. 사람에 대해 배우니까 의식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또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것이 상대방이 아닌 자신에게 탓을 돌리게 되고. 일반 사람들처럼 편하게 남탓하고 넘어갈 일을 내 탓하고 힘들어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 이뿐인가. 편견 같은, 사람이 쉽게 사고하기 위해 만든 방식을 통제적으로 컨트롤하려고 하고, 인지적 절약가로서의 면을 경계하면서 종내에 어렵고 힘든 삶을 선택하는

미저리 같은 인생들. 알면 알수록 아는대로 사는 게 힘들어진다.

그런데 또 바보처럼 다시 태어나도 심리학을 전공할거라고 심리학과 사람들은 웃는다. 나도 웃는다. 아는만큼 힘든게, 모르는만큼 쉬운 것보다 마음 편하니까. 그리고 가끔은 서로가 서로를 이만큼 알아주는 것도 꽤 괜찮으니까.

때론 말하지 않아도 들여다보고 말 몇마디로 누구보다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심리학 사람들. 이래서 심리학 전공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지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완전히 맞는 얘기도 아니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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