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추울 때 오셨네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헛헛한 웃음과 함께 하필 와도 이런 날 오셨냐고 말을 건넸다. 남해에서 정말 바람도 많이 불고 추운 날이라고, 딱 내가 머무는 오늘내일이 그럴 거라고 말을 이었다. 잘못된 날씨에 이 곳에 들어선 방랑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웃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있었던 서울이 이곳보다는 훨씬 추웠다. 그때, 사장님의 어머니가 말했다.
겨울이 왔는데, 추워서 나쁠 건 없지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 경보가 내렸다는데 굳이 여기만 춥지 않을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겨울에 왔는데,
안 추운 걸 바라는 건 모순이겠죠.
추운 게 당연한 시기에 춥다며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었던 걸까. 회사 점심시간, 갈비탕을 앞에 두고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예전에도 취업난은 있었어.
너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란 말야.
요즘 애들은 참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요즘 애들로 시작되는 익숙한 레퍼토리, 나는 갈비탕을 몇 술 뜨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겨울엔 항상 손이 시렸는데, 왜 너희만 손이 시리다고 난리니.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쓸려왔다가 쓸려나갔다.
나중에 나는 그 얘기를 설명하며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었다.
"그 '요즘 애들'도 겨울엔 항상 춥다는 걸 알고 있어.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야. 하지만 겨울은 '더' 추워졌어. 그건 사실이지. 겨울을 더 추워지게 만든 이들은 누구일까? 그리고 어쩌면 어른들 말대로 우리는 '더' 민감하게 자랐을지도 몰라. 그러면 말야. '요즘 애들'을 더 민감하게 키운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엄마에게 고갯짓을 했다. 자기 자식 추울까 봐 온 몸을 꽁꽁 싸매는 사람들 눈에 자기 자식 아닌 아이들은 그저 '요즘 애들'일뿐인 걸까. 그들이 하는 소리는 그저 투정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걸까.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이렇게 말했다. 어떤 자식이 자신의 부모의 자리를 빼앗고 싶겠어.
덜컹덜컹. 세찬 바람이 창문을 때렸다. 앞으로도 매번 겨울은 더 추워지겠지. 그때마다 여기 다시 와야겠다고 결심했다. 딱 더 추워진 만큼만 호들갑을 떨어야겠다고도 다짐했다.
추우니까 춥다 아프니까 아프다
추워서 춥다고 하는데, 아프니까 아프다고 하는 게 그게 그렇게 나쁜 건가, 투덜거렸다. 어디선가 추위에 대해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극단적인 추위는 온도감각뿐만 아니라 고통으로 인지하는 통각으로 수용된다.
즉, 고통인 셈이다.
아파서 아프다고 하는 게 무슨 죄일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고 가르쳤고, 또 배워왔다. 오히려 그간 대한민국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픈데 아프지 않다고 말하며 살아온 게 아닐까, 나는 문득 씁쓸해졌다. 밖이 얼마나 추운 건지 창가엔 살얼음이 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