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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an 12. 2017

어떻게 갈까요?

택시 아저씨가 물었다

요즘처럼 추운 날엔 가까운 거리여도 택시를 찾게 된다. 엊그제는 장충동에서 택시를 잡았다. 해방촌이요, 손을 비비며 목적지를 말하자 아저씨는 서서히 차를 출발시키며 물었다.


어떻게 갈까요?


"알아서 가주세요 아저씨가 잘 아시겠죠", 라는 답에 아저씨는 머쓱하게 웃으며 라디오를 켰다. 안녕하세요 배철수입니다, 라디오에선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때였다.


요새 손님들은
어떻게 가야하는 지도 정해주거든요.


라디오 소리 사이로 택시 기사 아저씨의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운전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아저씨와 백미러를 통해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같은 사람보단
자기 손 안의 핸드폰을 더 믿는 거겠죠


아저씨의 말에선 씁쓸함이 느껴졌다. 복잡한 서울을 골목골목 줄줄 꿴다던 아저씨는 이제 3년만 있으면 택시를 몬 지 30년이 된다고 했다. 기계를 조종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기계에게 조종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아저씨의 말에 문득 나는 서글퍼졌다. 내가 아는 다른 택시 아저씨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까, 왠지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나주에 가면 꼭 한번씩 택시 사무실에 들린다. 아빠는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으면 택시 운전 기사들을 찾아다녀야 한다고 했다. 으레 들리는 택시 사무실이 생긴 건 그 때문이었다. 아빠는 택시 운전 기사들이 세상의 바로미터라고 했다. 물론 여론을 말한 거겠지만,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말 세상을 떠올렸다.


그새 택시는 해방촌 사거리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카드를 돌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도 택시 타면 알아서 가주라고 말해줘요
요새는 그 말만큼 기분 좋은 말이 없어요

아직 택시 운전해도 되겠구나 싶어


아직 택시 운전해도 되겠구나 싶어, 중얼거리듯 말하던 아저씨의 표정이 묘하게 참담하고 또 묘하게 기뻐보였다. 그 이상한 표정이 하루종일 머리 속을 가득채웠다.


누군가는 확신을 가진 채로, 또 누군가는 확신이 없는 채로 우리 모두 어디론가 가고 있다. 분명한 건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이든 고집이든 어떤 종류의 믿음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남들도 우리를 믿어준다는 것.


그러다 훗날 세상이 변해서 우리도 각자 살아온 분야에서 새로운 누군가에게 어떻게 갈까요?, 묻게 될 날이 오겠지. 알아서 가주세요, 라는 말에 아직도 무언가를 해도 괜찮겠다, 안도하고 또 슬퍼할 날이 오겠지, 나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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