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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an 04. 2017

현실부적응자, 깨닫다

간절하게 보이지 말 것

 절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까. 남들보다 열 배, 백 배, 아니 천 배 이상 노력하지 않으면 목표한 바에 다가갈 수 없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이 어느 순간 내 삶에서 사라졌다.


연희동 침대 위에서, 알아듣지 못할 고양이들에게, 집으로 가는 성산대교 위에서, 새벽녘 비가 촉촉이 내리던 독일의 한 시골길에서, 오스트리아 환승역 맥도날드 갑작스럽게 카푸치노를 사주신 할아버지에게 물었던 질문들.


너와 내가,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꼭 물었을 얘기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반짝이는 눈으로 대답했었는데, 어느덧 이십 대 중반, 늙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리지도 않은 나는 이제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다른 답에 고개를 끄덕인다.


간절, 절실, 절박, 그런 건

모두 나를 위로하는 단어들일 뿐인지도 모르겠다고.


어느 순간 절실하다는 게, 절박하고 간절하다는 게 어떤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간절한 사람일수록 시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고, 절박한 사람이지만 절박해서 오히려 딱 코앞밖에 못 내다보는 일도 많고,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절실하기만 한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냥 그렇게 되었다.


아직 가고자 하는 길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머무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 이 길, 괜찮지 않냐고. 나쁘지 않으면 괜찮은 거라고, 원래 세상은 그런 거라고 속삭인다. 처음엔 혹했다. 나보다 더 오래 세상을 겪은 사람들의 말에는 반드시 따라야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까, 나의 선택은 그런 것들을 배제한 걸까, 두려움도 따라온다. 그러다 세상에 한 발 더 담궈보면 그제야 알 수 있다. 그들의 말에서 뚝 뚝 떨어지는 무기력을.


분명 최선이 아닐 땐 차선을 선택하라고 배웠다. 그런데 세상은 최악 대신 차악을 찾는다. 그리고 의문을 가지면 원래 그런 거란 말로 얼버무린다. 차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게 정말 우리가 사는 삶인 걸까봐 나는 무서웠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믿고 싶지 않았다.


노력하되,

간절하게 보이지 말고,

절박하게 보이지 말고,

절실하게 보이지 말자.


최선을 쫓는 자는 언제나 절박할 수밖에 없지만, 차악을 걷는 자에게 그 절실과 간절은 노력이 아닌 허점으로 보일 뿐이니까. 기초라고 생각했던 게 현실에서는 기본이었고, 또 기본이라고 여겼던 게 심화가 되는 이상한 세상과 마주한다. 점점 더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할 지 정하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간절, 절실, 절박, 그런 거.

보여주지 말라는 말을 어느순간 입에 달고 산다.

정작 본인이 가장 간절하고 절실하고 절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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