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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Mar 20. 2017

내가 칠하는 세상

드로잉 수업 3교시

언제부턴가 여행을 간다는 말이 그림을 그린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다. 그림이란 게 오묘해서, 점점 할수록 욕심이 난다. 단순히 펜 드로잉을 떠올리며 시작한 드로잉이었는데, 이제 손에는 펜 대신 붓이 들려 있다. 표현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담고 싶고, 더 넓은 곳을 보여주고 싶다. 


사실 색을 칠하게 된 건 오밀조밀한 건물이나, 형형색색의 옷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 날의 공기, 그 날의 소리, 그날의 온도. 내 눈 앞의 모습을 좌우하는 대부분의 것들에는 선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거의 항상,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다. 단순한 선으로 표현할 수 없으니 가슴을 치기도 여러 번, 그러다 답답함에 떠밀려 색채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사카 전철의 어두침침한 하늘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정해진 하나의 물감 색 말고, 여러 색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참 매력적이다. 파랑과 빨강을 섞어 보라를 만들고, 노랑과 빨강을 섞어 주황색을 만들었다. 내 눈 앞의 세상은 누군지도 모를 신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이 종이 속 세상의 신은 바로 나다. 전지전능한 힘에 심취해 나는 붓을 놓지 못했다. 어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힘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는 친구들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것까지도, 그런 나를 북돋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존재했던 공간을, 단순히 해석하는 게 아니라, 변형할 수 있다는 재미가 들려 자꾸 그림을 그리게 된다. 원래와 다르게 내 멋대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세상. 위 그림은 교토의 헤이안 신궁이지만, 여느 사람의 사진이나 동영상 속엔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헤이안 신궁이다. 저 무녀 또한 오로지 내 그림에서만 살아있는 존재다.


나는 그림을 왜 그릴까. 갑자기 그 고민을 하다가 또 제자리로 돌아온 스스로를 마주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결국 또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세상을 짓는 일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우리 모두 모르고 있는 일들. 모든 사람들의 곁에 있지만,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닌. 이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나는 한 번의 붓칠에서 

내가 칠하는 세상의 의미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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