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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Feb 21. 2017

가장 큰 생일선물

고맙고 사랑합니다

생일 축하해, 라는 말로 눈을 떴다. 생각해보니 어젯밤, 잠들기 전에 생일 축하해,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들었다. 핸드폰 잠금화면엔 생일 선물과 생일 축하가 담긴 메시지 알림이 줄지어 서있다. 마치 다른 왕국의 사신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는 왕처럼, 기분이 우쭐해졌다. 


어떤 친구는 오늘의 1분 1초를 웃음으로 채우라고 했고, 또 어떤 친구는 세상 온갖 맛있는 걸 정복하라고 했다. 예쁜 것, 재밌는 것, 맛있는 것, 온통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로만 내 삶이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말에 아침부터 싱글벙글하였다. 우리 부모님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또 한 사람의 말에 가슴 떨리게 설레기도 했다.


이 모든 게 내게 익숙지 않았다


근 몇 년 간 내게 생일은 참 보잘것이 없었다. 사람이 태어난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축하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내 존재가 의미가 있는 걸까 싶어서 생일의 가치를 절하하곤 했다. 생일 축하해,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웠다. 그래서 되도록 생일 땐 사람들을 피했다.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에게 무언가 기대할까 무서웠고, 기대가 당연해져 실망할까 두려웠다. 그저 태어난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 전엔 축하를 받아서도, 받을 수도 없다고 스스로를 옥죄곤 했다.


이상하다. 그때와 지금은 별로 변한 게 없는데, 나는 오늘 괜히 행복하다. 재채기처럼 나타나 모든 사람들에게 “bless you!”, 축복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일과 시간에 밀려났던, 오랜 사이들이 익숙한 골목길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반가운 얼굴들의 반가운 이야기. 이런 행복엔 어떤 자격요건도 필요가 없다.


생일 축하해, 라는 말로 눈을 감는다. 

참 고맙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

그들보다 큰 생일 선물은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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