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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Nov 16. 2016

뭘 모르는 학생 땐

회사원이 세상에서 제일 편해 보였다

뭘 모르는 학생 땐, 힘들면 술을 찾는다는 회사원 친구들의 말에 혀를 끌끌 찼다. 뭘 모르는 학생 땐, '퇴근하면 너무 지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런데 그러면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라고 말하는 회사원 친구들이 도리어 한심했다. 그리고 뭘 모르는 학생 땐, 바빠서 연락할 틈이 없다는 연인의 말에 바빠도 화장실 갈 틈은 있다고 툴툴거렸다.

굳이 술이 아니어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한심하다면 무엇이든 하려하면 되는데, 바빠도 언제나 자기가 연락하려 하면 틈은 나는데. 뭘 모르는 학생 땐 그런 생각들을 했다.

회사에 다녀본 뒤, 나는 더이상 저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렇다. 하루종일 사람들과 씨름하느라 지쳐버린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게 술 한 잔이 될 수 있고. 모두와 싸우고 돌아온 하루 끝을 자기관리라며 스스로에게 싸움을 걸고 싶지 않다는 걸 잘 알아서 그렇다. 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맞다고, 한심은 미래의 내가 감당할 몫이지, 당장 현재의 나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걸 느껴봐서 그렇다. 커피 마실 시간도 있고 밥 먹을 시간도 있고 화장실 갈 시간도 있고, 다 맞는데, 하루종일 일에 얼이 빠져 연락할 정신머리가 없어본 적이 너무 많아 그렇다. 뭘 모르는 학생 때, 자기 파괴가 자기 보호의 한 갈래일 수도 있다는 걸 배웠는데 뭘 몰라서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뭘 좀 알아야 하는 나이가 되자, 나는 자기 보호의 가장 쉬운 방법이야말로 자기파괴라는 것을 절절히 깨달았다. 지켜왔던 신념을, 꾸준했던 행동을, 선호했던 취향을 파괴하는 것.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진실로 자기를 지키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나를 흔들고 위협하는 원인은 모두 밖에 있는데, 그런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건 오직 내 안에만 있다. 외부에서 밀려오는 힘이 나를 짓눌러 숨쉴 수 없게 만드는데,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그 힘을 약하게 만들어줄 초인같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뿐인데, 세상엔 그런 초인이 없다. 오로지 나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 그 생각을 하다가 퍼뜩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 한 몸만 건사하고 싶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그저 내 한 몸 건사한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핑 눈물이 돌았다.

뭘 모르는 학생 땐, 몰랐던 일들이었다.
무언가를 알게 되는 건 참 좋은 일인데,
왜 아는 것이 이리도 억울해지는 것일까. 

왜 이리 어쩔 수 없는데 어쩔 수 없어 슬픈 걸까.

그래서일까.

삶이 너무 지옥같다,
친구의 연락에,
우리가 뭘 몰랐던 때가 생각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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