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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Mar 09. 2017

매일 조금씩 후레자식

“늙은 사람들이 더 후레자식이 될 일이 많더라.”

저번 날엔 엄마가 서울에 올라왔다. 엄마는 또 자식 입에 들어갈 걸 바리바리 짊어지고 나타났다. 


“엄마는 그냥 오지, 이렇게 무거운 걸 짊어지고 그래.” 툴툴거리며 엄마의 손에서 쇼핑백을 낚아채자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그래도 앞에 있으면 뭐라도 줐어 묵을 꺼 아니냐” 가끔 엄마가 드라마에 나올 법한 말들을 자연스럽게 할 때마다 드라마가 세상의 반영이라는 걸 깨닫고 한다. 물론 과장되고 왜곡된 반영으로.


TV를 켜자 온통 나라 소식에 시끄럽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다들 특종이라는 스티커를 붙여 똑같은 상품을 진열해놓는다. “진득허니 하나만 틀어라” 엄마는 물티슈로 바닥을 닦으며 말했다. 그리곤 혼자 중얼거리며 계속 바닥을 훔쳤다. “이놈의 머리카락, 가스나들이 사는 흔적 남기는 것도 아닌디, 겁나게 빠져 싸야” 그런 엄마를 쳐다보다가 다시 TV로 고개를 돌렸다. “존경합니다.” tv속에는 안경 너머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는 남자가 앉아있다. 왠지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젯밤, 술자리에서 저 사람에 대한 말이 나와서일까. “다들 꼬리 자르고 도망치는 마당에, 나는 저 정도로 당당한 그 사람이 조금은 대단하다고 생각해” 한선배는 말과 함께 소주잔을 채웠다. “잘못된 신념이든 잘 된 신념이든 이런 세상에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 부럽기도 하고” 나는 한 선배의 얼굴이 조금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엄마, 저 사람은 정말 나라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겠지?” 뜬금없는 질문에 엄마는 고개를 들고 tv를 쳐다보았다. “처음엔 어땠을지 몰라도 나중엔 그랬을 거시다.” 엄마의 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남자의 얼굴  다음엔 수의를 입은 여자가 셔터 세례를 받으며 울부짖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다음엔 대머리의 남자의 억울한 표정이, 또 그다음엔 손에 서류를 쥔 채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시대가 저물기도 전에 누구는 눈을 부릅뜨고 팔짱을 꼈고, 더 많은 누구는 등을 돌렸다. 그들은 어릴 때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프레리독처럼 움직였다. 경계를 못한 순간 바로 맹수의 아가리 안에 축 늘어졌던 프레리독. 경계병인 프레리 독의 죽음인 또 하나의 신호가 되어 수많은 프레리독이 땅굴 속으로 삽시간에 흩어졌다.


“엄마, 가끔 보면 사람들의 세상이 더 동물 같아.” 엄마는 이제 오리걸음 자세로 옷장 앞에 주저앉아 바닥을 치우고 있다. “아이고 동물보다 못해야, 동물은 솔직하기라도 하제. 본능이든 욕심이든 뭐시든.” 엄마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사람 새끼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게 옳다고 믿고 싶어 하잖여, 지 입 채우려고 하는 거면서 모두의 입을 채우는 것처럼 꾸미는 것도 다 그런 거여야. 옛날엔 미스코리아 한다고 나와가꼬 세계평화 얘기하고 그러지 않더냐. 그런 게 다 거시기한 거여야.” 


“그럼 나이 든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가치 이런 거, 다 자기를 위한 거야?” 나는 되물었다. “그라제”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근디 그거시 다 나쁜 건 아니여야. 그렇게 의미를 찾는 거제, 나를 위한 행동이 모두를 위해 좋은 걸 수도 있냐. 엄마가 말하는 건 자기를 위한 행동이 자기만을 위한 행동인지 모르고 스스로 거짓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여야. 그게 후레자식들이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살아보니께, 더 오래 산다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닌 거 같더라야” 엄마는 손을 멈추고 자리에 엉덩이를 내려놓고 나를 쳐다보았다. “응?” “늙은 사람들이 더 후레자식이 될 일이 많더라.” 갸우뚱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엄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내는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짧잖여, 그제? 근디 내가 살아온 시간을 거시기해버리고, 다시 여기부터 시작이라고 하면 너 같으면 어쩌겄냐?” “싫겠지?” “그려, 너 같이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은 애도 싫은디 어른들은 오죽허겄냐. 어른들이 더 오래 살아서 더 유치할 수 밖에 없어야. 새로 시작할 수가 없은께,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옳다고 더 믿고 싶고 그런거제. 젊은 니들보다 훨씬 더. 근디 살면서 어떻게 좋고, 모두를 위한 일만 하겄냐. 자기만을 위한 일도 하고, 나같이 내 새끼들을 위한 일이라면서 나서고 그렇게 살지야. 그렇게 모두 다 조금씩 후레자식이 되는겨.”


“그래도 그냥 이건 잘못했다. 이건 안 잘못했다. 솔직할 수도 있는 거잖아?”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느그들 같이 진짜 자기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고, 진짜 자기를 위한 게 뭔지 저울질해본 사람들이 하는 거제. 엄마처럼 그냥 내 자식 잘 키우는 게 최고고, 내 가족 잘 사는 게 최고인 사람들은 못해야.” 


“그래?” 나는 물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모두 다 조금씩 후레자식이 되어가는 거라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라제.”엄마는 답했다.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탓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에 숨이 조여왔다. 


도통 사람살이라는 게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어쩔 수 없어 슬픈 순간이 자꾸 나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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