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프로방스 여행의 기억
아프리카에서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첫 해 여름이었다. 이메일로 뜬금없이 카약킹 예약번호가 날아왔다.
어렸을 때 수영장에서 한번 빠져 놀랜 이후로 난 수영을 못하고 물을 무서워한다.
그런 내가 카약킹을???
범인들은 우리 집 세 남자- 남편을 포함한 아들 두 녀석이었다. 나한테 얘기하면 안 한다고 반대할 것 같아서 일단 예약부터 했다는 것이다. 그해 여름 바캉스는 프랑스 남부 여행을 계획 중이었는데, 카약킹을 해보고 싶다는 첫째 키위 군의 바람대로 아빠가 예약을 덜컥한 것이었다. 엄마한테는 당분간 비밀로 하기로 하고...
남편은 아이들은 현지 가이드가 케어할 거고, 나는 자기가 책임? 질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를 쳤다. 카약킹 장소는 앤티크와 벼룩시장으로 유럽에서도 유명한 릴 쉬르 라 소르그라는 곳이다. 남들은 우아하게 앤티크나 공예품 등을 보러 가는 곳에 카약을 타러 가야 하다니...
우아한 거와는 거리가 먼 아들 둘 엄마의 현실. 아이들만 아니었다면 당장 취소했을 테지만.. 아들을 위해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물을 무서워하는 내가 카약킹이라니,, 세상에나...
프랑스 프로방스의 베니스라 불리는, 예쁜 그림엽서 같은 마을, L'Isle-sur-la-Sorgue 릴 쉬르 라 소르그.(발음이 좀 어려운데, 릴르 쉬흐 라 소흐그가 더 가까운 발음임)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된 곳이다.
운하로 둘러싸인 이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노래처럼 귓가를 맴도는 물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강둑을 따라 산책을 하고 크고 작은 상점들에서 안티크와 골동품 등 예술 작품을 보는 재미도 있고 마을 곳곳 숨겨져 있는 물레방아를 발견하는 기쁨도 있는 곳,,,
마을에 물레방아가 15개가 있다는데 아쉽게도 난 겨우 6개의 물레방아만 발견했을 뿐이다. 다음 여행 때에는 모두 찾아보리라 생각하며...
이곳에서는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좋다. 강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아기자기한 노천카페에 앉아 그저 흐르는 강물의 리듬을 함께 타며 잠시 사색에 잠길 수 있다. 여름에는 장이 서지 않는 날이면 뜨거운 햇살 아래 마을은 조용하다.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니 리옹 출신의 가이드, 이름은 기욤이라는 청년이 우리를 반겼다.
4년 전에 이곳으로 온 그는 여름에는 카약킹 가이드로 겨울에는 알프스에서 스키강사로 일한다고 하였다. 첫눈에 프로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에 일단 마음이 놓였다. 기욤과 아이들이 함께 타기로 하고, 남편과 내가 함께 탔다. 기욤이 남편보고 괜찮냐고 묻자 남편은 자기는 수영도 잘하고 카약킹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기욤이 엄지 척을 하며 우리에게 구명조끼와 소지품을 담을 수 있는 하얀 물통을 건넸다. 강물은 정말 굉장히 차가웠다. 그날 기온이 거의 38도를 찍었는데 물은 얼음장같이 차가워서 깜짝 놀랐다.
소르그 강을 타고 가는 카약킹 초반에는 물살이 아주 잔잔하다. 그래서 그곳은 베르동 같은 협곡에서 하는 그런 카약킹이 아니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나 나처럼 수영 못하는 사람들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다소 얌전한 카약킹 코스였다.
기욤과 아이들이 탄 카약을 선두에 두고 잔잔한 물살을 따라 남편과 나의 카약이 천천히 흘러갔다.
갑자기 갈수록 물살이 세지면서 급류가 나타났지만 다행히 잘 넘어갔다.
가이드 기욤이 이럴 때마다 미리미리 안내를 해 주었다. 중간중간에 나뭇가지가 뻗어 나와 얼굴을 다칠 수도 있을 때나 물살이 갑자기 세질 수 있는 곳에서는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 알려주었다. 그런데 중간 즈음 가다가 물살이 엄청 빨라지는 곳이 나왔는데 기욤과 아이들이 탄 카누는 별문제 없이 지나갔지만 남편이 젓는 우리 카약은.. 이번에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서 돌기만 했다.
뱅뱅...
한 자리에서 계속 뱅뱅...
당황한 남편이 노(패들)를 계속 저으니 이번에는 카약이 후진을 하였다. 남들은 다 앞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만 뒤로 가고 있는...
카약 타고 후진해 보기도 참 쉽지 않은 경험인데,,, 남편 덕분에 해봤다. 출발 전 카약킹 경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남편, 알고 보니 20대에 딱 한번 타본 경험이 다였던...
결국 나도 노를 젓기 시작했다. 카약킹 출발 전에 남편이 나 보고는 패들 젓지 말고 편하게 있으라 해서 그냥 계속 가만있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나도 노를 저었다. 아주 열심히 저었다,,, 내가 노 젓기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전생에 뱃사공인 줄.. :D
그리고 나의 활약?으로 우리의 카약은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고 그때부터 난 계속 남편과 함께 노를 저어야 했다!!!
뜻하지 않게 세 남자 때문에 경험한 나의 첫 카약킹은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 설레는 경험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안티크 부티크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이곳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잔잔한 강물을 타고 이어지는 카약킹을 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소르그 강을 타고 퐁텐 드 보퀼루즈로 빠지는 강물길에서 마주치는 강 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집들과 고풍스러운 건물들… 물살을 가로지르며 카약을 타는 기분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아~ 이래서 여기를 프로방스의 베니스라 부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소르그 강의 수정 같은 물살을 가르며 강의 흐름에 맞춰 노를 저으면서 만나게 되는 물 위의 아름다운 자연들은 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리고 이곳을 떠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청량감 있는 물소리는 나의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느리게 가는 마을, 예쁜 그림엽서 같은 그곳, 프로방스의 베니스인 릴 쉬르 라 소르그에서는 바쁜 여정은 잠깐 접어두고, 카약킹과 함께 잠시 쉬어 가면 좋을 것 같다.
About L'Isle-sur-la-Sorgue 릴 쉬르 라 소르그
프로방스 Vaucluse 지역의 역사적인 도시로 아비뇽, 오랑쥬 등이 부근에 있음.
소르그 강 유역에 위치한 이곳은 골동품 가게, 벼룩시장, 박람회 등으로 유명.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안티크를 구입하기 위해서인데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곳인 Le Village des Antiquires de la Gare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영업을 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임.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오전 7시부터 목요일은 12시까지, 일요일은 1시까지 시장이 서는데 현지 신선한 농산물과 치즈, 와인 등을 구입하기 좋음.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남쪽 냄새가 나는 아름다운 프로방스 색으로 물든 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음.
인근에는 퐁테 드 보클뤼즈의 협곡과 과수원과 포도밭 사이를 도보나 자전거로 즐길 수도 있는, '볼 것'과 '할 것'이 무궁무진한 에메랄드빛 마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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