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레저 Oct 10. 2022

어쩌자고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 다림질에 진심이었던 이유

아무리 우리와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사는 곳에 익숙해지고 세월을 보내다 보면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살게 되고 버텨지는 게 해외생활인데, 아프리카는 오히려 살면 살 수록 나로 하여금 '어쩌자고 아프리카까지 와서...'라는 후회를 하게 만들었다. 사막에 갖다 놓아도 살아남을 거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해외생활 경력이 많았던 우리 부부에게도 아프리카는 결코 쉬운 곳이 아니었었다. 게다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살아야 하니 마음 한편은 커다란 돌멩이를 매달고 사는 것처럼 무거웠다.


집 주위에서 파브르 곤충기를 방불케 하는 다양한 곤충들을 보거나 언젠가 거실에서 날아다니는 커다란 바퀴벌레의 등장에 소스라치게 놀랐을 때도 -정말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 주차해 놓은 자동차 밑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을 봤을 때도, 이웃집 개를 압사시켜 잡아먹은 거대한 구렁이 출현에도, 나는 그리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사니 그런 것들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열악한 주위 환경 외에도 의료시설, 교육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닥쳤을 때는 그냥 견딘다고,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착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1. 피검사하러 갔다가 진짜 피볼뻔한...


어느 날 갑자기 열도 심하고 온몸이 욱신욱신 너무 아파오며 특히 머리가 깨질듯했다. 혹시 또 말라리아가 아닌가 싶어 얼른 군 병원으로 달려갔다.

군 병원은 가봉에서 제법 큰 종합병원으로 시설도 괜찮고 의사들도 군의관이기는 하지만 실력들도 좋다 해서 그나마 믿고 가는 병원이었다. 담당의사 말로는 과로에 스트레스가 겹쳐서 그런 것 같다고 하며 그래도 혹시 모르니 피검사를 해보자고 하였다.


말라리아 걸렸을 때도 이미 고생한 경험이 있어 피검사는 정말 안 하고 싶었지만 정확한 검사를 위해서는 피할 수가 없었다.

이곳 의사들은 가까운 모로코나 유럽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많아 실력이 괜찮은 의사들이 꽤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믿고 싶었다…) 문제는 간호사들이었다.

듣기에는 이곳도 간호 직업 전문센터나 학교 같은 게 있다고 하였지만 솔직히 실력들이 믿을만한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때 피검사를 한 간호사는 좀 나이 드신 분이었는데,  손가락으로 내 팔 위를 이리 탁탁! 저리 탁탁! 하더니 혈관을 못 찾겠는지, 아니면 못 보는 건지,,, 결국 옆에 있는 간호사한테 '돋보기'를 갖다 달라고 요구하였다.


이때부터 나의 불안은 급상승,,, 혈압까지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돋보기를 쓰고도 결국 팔에서는 혈관을 못 찾아 손등과 손목에 연결된 혈관에다 주삿바늘을 갖다 꽂았다.


아~아~아~앗~악~!!!


비명소리가 저절로 나왔고 눈물이 나왔다.

정말 아팠다.


손등에 바늘을 꽂고 하는 피검사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문제는 바늘을 잘 못 찔렀는지, 어쨌는지 다시 빼서 옆에 또 찌르고,,,

정말 욕이 나올 뻔했다.

그래서 나도 참다못해 당신 할 줄 모르면 다른 간호사 부르라고 하였더니 자기 문제가 아니라 '내 혈관이 너무 작아서'라고 변명하였다.

아니,,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피검사할 때 아무 문제없던 내 혈관이 왜 갑자기 당신한테만 작은 건데?!!!


결국 그렇게 고통스럽게 5통이나 피를 뽑히고 내 손등과 손목에는 이렇게...

피검사받고 나온 나의 허옇게 질린 얼굴과 손의 붕대를 발견한 남편은 황당해하면서 화를 내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20여 일이 지났는데도 피멍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내 마음에도 멍이 들었다.

피검사 한번 받았다가 정말 피 볼뻔한 이 일을 계기로 의료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 이곳에서 앞으로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2. 아프리카에서 다림질에 진심이었던 이유


내가 처음에 그곳에 갔을 때 한인 분들께 자주 듣던 이야기가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속옷까지 다려 입는 게 좋고 절대로 밖에 빨래를 널어두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에는 파리나 곤충들 중 사람의 피부와 접촉해서 알을 낳는 것들이 있고  이 알들은 부화한 뒤 피부 속을 파고드는 유충이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한국에서 회사일로 출장 왔던 어느 분이 속옷을 손빨래 후 밖에 널어 말렸다가 입은 다음에 온 몸에 파리 유충이 생겨 병원에 가서 그것들을 하나하나 짜내야 했던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빨래를 밖에 널어 말리는 것도 안되지만, 세탁 후 꼭 다림질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헉! 사람 몸에 알을 낳는 파리라니,,,

생각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걱정은 되면서도 처음에는 뭐 다림질까지 해야만 하나? 하는 생각에 빨래만 밖에 널지 않았을 뿐 옷을 다려 입어야 하는 것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결국 나도 '다림질'에 진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제야 나도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가봉 살이 2년째 되던 해로 기억한다. 우연히 그곳 한인분께 그녀가 얼마 전 완전히 가봉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결국 그렇게 떠났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내가 온 후 얼마 있다 그녀는 영국인 남편과 이제 막 3살이 된 어린 아들을 데리고 리브르빌 시내에 신설된 사립학교의 영어교사로 왔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영어 학원을 운영했던 그들 부부는 더 높은 연봉과 주택이나 차량 등이 제공되는 좋은 조건으로 오게 되었고 우리 부부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황금빛 미래를 꿈꾸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엄마와 같은 학교 유치원을 다녔던 그녀의 아이에게 불행이 닥쳤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어린 아들의 온 등에 파리 유충들이 가득해 병원에 가서 그것들을 일일이 짜냈고, 고통스러워하는 아이의 비명에 그녀는 거의 실신 직전까지 갔으며 결국 그 일로 그들 부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시 원래 살던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학교 놀이터에서 놀다가 감염이 된 것인지 아니면 진짜 파리가 알을 낳아둔 것을 모른 채 옷을 다림질을 하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인지 불행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그녀가 겪은 일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직 세 살밖에 안된 아이가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까…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리고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고, 어쨌든 이런 충격적인 사고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방법은 현지에서 사신지 오래된 사람들의 조언대로 '다림질' 뿐이라 생각하며  그날부터 옷을 다리는 일은 나의 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차지하게 될 정도로 중요한 일이 되었다.


파리가 알을 낳기 쉬운 부분이 옷소매, 겨드랑이 부분, 속옷 같은 곳은 고무줄, 밴드 부분이 있는 곳들이라는 말을 듣고 다림질할 때면 온 신경을 쏟아 정성껏 다리게 되었다. 다리고 있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뻐근했지만 그런 고통은 참을만하였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내 아이들에게 그런 끔찍한 일들을 나의 태만과 부주의로 인해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 정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결국 나도  아프리카에서 속옷을 다려야 안심하고 입을 수 있을 정도로  ‘다림질’에 진심이 되고 말았다.

다리미질을 너무 많이 한 날은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어쩌자고 아프리카까지 와서'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



지금은 프랑스로 돌아와 남편의 와이셔츠 외에는 거의 다림질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다 피검사를 받게 되어도 나는 불안한 맘 없이 내 팔을 내민다. 아프지 않게 다들 어쩜 그리도 잘 뽑아내시는지 … :D


이제 그곳에서의 일들은 추억이 되고 옛이야기가 되었다.


Adieu l'Afrique!! 아듀 아프리카!

덕분에 인생공부 잘했다.

영원히 안녕 아프리카!!




이전 08화 경호원 아내의 삼시세끼 아프리카 생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