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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Mar 06. 2022

경호원 아내의 삼시세끼 아프리카 생활.

어쩌다 삼시세끼가 가져다준 행운

#1.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화려한 드레스가 아니라 ‘앞치마’였다.


 Vip 경호원 아내가 되면 드라마에서 봤던 그런 것처럼 어느 파티에 초대되어, 샬랄라 한 드레스 입고 고급 샴페인 마시면서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과 어울려 파티를 즐기는 ~ 상상을 하며(드라마를 너무 봤네, 너무 봤어 ),

나도 그런 생활을 해보나~ 하는 기대를 좀 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난 아프리카에 도착하자마자 삼시 세 끼를 챙기는 부엌데기가 되었고, 아프리카 생활 동안 내가 걸쳤던 건 화려한 드레스 대신 앞치마였다...

프랑스에서 회사 다닐 때 , 연말 파티할 때 입었던 등 파인 화이트 원피스를 혹시 몰라 챙겨 왔는데,

'  챙겨 왔니?'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는,,,

아프리카 생활 5년 내내 나의 칵테일 원피스를 입고 갈 만한 멋진 파티는 없었다.

아! 물론 거기도 크고 작은 행사나 모임이 있긴 했지만, 내가 상상하던 그런 파뤼 Party는 없었다는 얘기다.


#2. 삼시 세 끼를 챙기며 나도 몰랐던 숨은 재능을 발견하다!


프랑스에서 나는 코스메틱 관련 일을 했었다.

그래서 직업상 항상 메이크업이나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고 , 사실 요리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나보다 퇴근이 빨랐던 남편이 거의 저녁을 준비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주말이면 외식을 한다거나 남편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나 혼자 맡아서 음식을 만드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아프리카 와서도 남편이 많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문제는 남편이 집에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다는 게 함정.


물가도 비싸고, 한국 식재료도 구하기 힘들고, 마땅히 괜찮은 한국식당도 없기에 의도치 않은 '자급자족'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집밥만으로 삼시 세 끼를 모두 다 차려낸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남편 김 차장은 평상 근무일 때는 아침 먹고 출근하면 저녁때 돌아오지만 아이들은 그곳 프랑스 초등학교가 12시 반이면 끝나기 때문에 집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거의 집에서 음식을 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아이들 아침 먹여 학교 보내 놓고 점심준비, 아이들 하교 후 집에 와서 점심 먹이고, 오후 4시에 간식 준비, 그리고 다시 또 저녁 준비, 어쩌다 손님이라도 초대하는 날이면 정말,,,,

이런 부엌데기가 따로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현지에서 햄버거나 치킨, 피자 등도 팔고 베트남, 이탈리아, 멕시코 음식 등을 맛볼  있는 레스토랑들이 있긴 했지만 맛이 좋지는 않아서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물 때문에 그런지 외식하는 날은 꼭 설사나 배앓이를 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외식 횟수가 줄어들면서 점점 집밥을 찾게 되었다. 가봉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공관에 계시는 분과 티타임을 가졌었는데 그분은 야채나 과일도 정수기 물을 받아 식초를 섞어 세척 후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는 '좀 민감하신 분이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생활해보니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보다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었지만 식수의 안전성과 위생적인 면에서는 역시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난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삼시 세 끼를 차려야 하는 운명?이라면 이왕이면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생전 안 보던 요리 프로그램과 유튜브를 챙겨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하다 보니 하루하루 다르게 요리실력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김치는 물론 잡채, 보쌈, 탕수육, 깐풍기, 햄버거, 파스타 등은 기본이었고~

남편 김 차장이 있는 날은 면을 직접 뽑아 짜장면에 짬뽕까지^^

떡보 키위 군을 위해서 팥 시루떡에 백설기, 언젠가 한국에서 가져온 엿기름으로 식혜도 담그고,

심지어 밀가루 반죽으로 밀떡을 만들어 떡볶이까지 해 먹었다. 아! 그리고 생선살 바르고 야채랑 갈아서 수제 어묵도 튀겨보고~

팥빙수 귀신인 나를 위해서 직접 팥을 쑤어 우유얼음을 포크로 갈아(생각보다 어려움, 하다 보면 너무 팔 아파서 현타 옴 )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찰떡을 해동해 토핑으로 얹어 먹으면 ~

아~  이 맛이야! 가 절로 나왔다. 당연히? 두부도 직접 만들고(와~ 콩물 손으로 짜다 너무 힘들어서 정말 후회함), 콩나물도 키워보는 체험? 도 해보고~

울랄라~ 아프리카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런 걸 시도할?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만두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들은 만두 빚는 날은 온 가족이 테이블에 앉아 '만두공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직접 만두피와 속을 만들어 엄청난 양의 만두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몇 번의 실패 끝에 KFC 치킨을 비슷하게나마 집에서 만드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생각보다 비슷한 맛 내기 쉽지 않음 - 할아버지 치킨을 너무 좋아하는 막내 뭉치를 위해서 엄마인 내가 해 낸 것이다.  오~ 나 좀 하는데?



그런데 생각보다 내가 손 맛이 있었는지 하는 요리마다 맛있다는 칭찬을 받았다.

뜻밖의 나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집에 자주 놀러 오는 가까운 지인들도 맛있다고 폭풍 칭찬을  주었다( 모든 영광을 집밥  선생과 많은 요리 유튜버님들께 돌린다.) 물론 음식을 한 사람에 대한 고마움의 ‘인사’ 일 수도 있지만.. :D

프랑스로 다시 오는 바람에 무산되기는 했지만 난 자신감을 얻어 현지에서 치킨을 주메뉴로 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열려고 준비까지 했었다.

프랑스에서 계속 있었다면 내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알고 보니 요리가 체질이었던^^


#3. 어쩌다 '삼시 세 끼'가 가져다준 행운


프랑스로 돌아와  떠나기 전과 같은 일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한국과도 연결되어 있는 회사였다.

코로나로 타격이 심했고 결국 나는 일시적 정리해고가 되었다.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회사에서 나를 고용하는 것) 쉽게 말해 잠정적 실업자 상태가 된 것이다.

실업급여를 받지만 언제까지 회사를 기다릴 수는 없기에 난 다시 직장을 찾아야만 했다. 코로나로 경기가 안 좋은 건 여기도 마찬가지…

그런데 사람의 운명이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 같다.

우연한 기회로 난 파리에서 한국 외식업 관련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한국음식이 대세인 요즘 난 전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게 되었다. 유훗~*

운도 따랐지만 한국음식에 관한 지식이 없었다면 절대 채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할렐루야!


집에서 한 끼도 아니고 세끼 모두를 차린 다는 건 처음에는 무척이나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난 기꺼이 가족들을 위해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황금비율을 찾아 내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만들었고,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는 대신 갖은 한국 양념 냄새가 밴, 내 몸에서 나는 음식 냄새를 견뎌 내었다.

5년 동안 하루 종일 내가 걸치고 있었던 건 앞치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난 '음식 만들기'에 거의 올인하였다. 그 노력으로 아이들은 아프리카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고, 난 전보다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얻게 되었으니 내게는 아프리카에서의 삼시세끼 생활이 행운으로 돌아온 것이다.

Vip 경호원 아내로 살면 드레스 입고 파티하며 살 줄 알았던 내 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현실로 돌아와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기회도 오지 않았으리라.(밥 하기 싫다고 대충대충 해 먹고살았으면 내 요리 실력이 이렇게 일취월장하지는 않았을 테니)


만약 지금 하는 일이 하찮게 생각되고 하기 싫더라도 꼭 해야만 한다면, 이왕 할 거 마음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인생은 모르는 거다, 그로 인하여 나중에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질지도...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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