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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Sep 12. 2022

코카(콜라)가 그런 뜻인 줄 상상이나 했겠어?!

안 되는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아프리카 팁 문화

#1. 코카 coca로 부르는 그들만의 팁 문화


가봉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던 어느 날, 갑자기 거실에 있던 에어컨이 고장이 났다.

주방, 거실, 방마다 에어컨이 모두 설치되어 있어서 더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싶었는데,

오래되어서 고장이 자주 난다는 게 함정...


남편 김 차장이 관리자에게 연락해서 에어컨 전문 기사들이 집에 도착했다.

처음에 그들은 아주 정중하게 나에게 인사하며 에어컨 수리를 시작했다.

실외기가 있는 테라스 쪽에 한 명, 나머지 두 명이 서로 왔다 갔다 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더위에 그들이 너무 목이 마를 것 같아 메이드에게 그들에게 물과 주스를 갖다 주라고 하였다.

잠시 후 그들 중 리더 같아 보이는 사람이 와서 거의 다 되었는데, 아직 필요한 나사가 있어서

오늘 주문하고 며칠 후 다시 오겠다고 하며,, 그리고  약간 뭐랄까, 머뭇거리는 것 같이 나지막하게 혹시 코카를 줄 수 없냐고 물었다.

코카? 하고 되물으며  지금 코카는 없는데 다음에 준비해 놓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난 코카가 우리가 모두 아는 그 코카콜라인 줄 알았다.

뭔가 실망한 듯한 그와 나머지 수리기사들을 보며 난 속으로 ‘아~ 이 사람들은 물이나 주스보다는 콜라를 더 좋아하는구나!’ 하며 다음번엔 꼭 코카콜라를 사다 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 가봉 리브르빌 시내에 있는 현지 마트 모습


그리고 며칠 후, 내일 다시 문제의 에어컨을 마저 고치기 위해  사람들이 올 거라는 김 차장의 말을 듣고

난 그날 바로 슈퍼에 가서 캔으로 된 코카콜라를 한 박스 사와 냉장고에 넣을 수 있을  만큼 넣으며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생각했다.


다음날 약속대로 에어컨 고치는 사람들이 다시 왔고 그들이 수리를 끝내자 , 난 아주 친절하게

수고하셨어요~ 하며 그들에게 '자 시원하게 코카 하나씩' 드세요~ 하면서 캔으로 된 코카콜라를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순간 그들이 웃을 듯 말 듯, 서로 자기네들끼리 뭐라 뭐라 얘기하며 마지못해 코카콜라를 받았다.

불어가 아닌 다른 아프리카 방언으로 얘기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뭐지? 뭐가 문제지? 속으로 생각했다.

인사도 대충하고 떠나는 그들을 보면서 난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몰랐고 그들의 그런 태도에 기분이 좀 언짢았다. 내가 뭐 실수한 게 있나 싶어 계속 마음에 걸렸지만 알 길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우리 집은 콜라를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슈퍼에 콜라를 사러 갔던 그들을 위한 나의 배려가 거절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저녁 태권도 훈련을 마치고 들어온 김 차장이 갑자기 삼겹살을 구워 먹자고 해서 슈퍼에 가게 되었다.

삼겹살을 사고 계산을 하려고 서 있는데 내 앞에 백인 여자가 먼저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계산원이 자기한테 내어준 거스름돈을 다시 쏴악 계산원 앞으로 밀면서 'C'est pour vous, coca'' 이 코카는 당신 거예요'하는 거 아닌가?

'왜 잔돈을 주면서 코카라고 하지?'

옆에 있던 남편한테 잔돈을 주면서 왜 코카라고 하냐고 묻자 '아! 여기서는 팁(Pourboire)을 그렇게 불러'라고 말했다.

그제야 아!!!!

모든 의문점이 풀렸다.

남편한테 내게 코카를 달라고 했던 에어컨 수리기사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런,, 팁을 달라고 했는데 정말 콜라를 안겨 주었으니 ㅋㅋ 실망했겠네 다들' 하며 함께 웃었다.

내게 캔으로 된 코카콜라를 받으며 뭐지? 하는 듯한 그들의 표정을 떠올리며 다음에 오면 꼭 그들이 원하는  ‘진짜 코카’를 주리라 생각했다.


#2. 아프리카에서 코카를 주면 일어나는 일들


아프리카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나도 그들의 '코카 문화'에 익숙해져 갔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코카가 아니면 움직일 생각들을 안 하는 사람들도 있어 정말 열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돈을 벌고 있으니 자신들에게 그 정도의 팁은 당연히 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코카 문화가 그곳에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느끼게 되었다. 이들에게 팁을 주면, 방금 전만 해도 안 되는 일이 코카를 쥐어주는 순간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낯설고 복잡한 서류 문제들과 행정처리들로 고심하는 경우가 생길 때는 정말 필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현지 사람들로 가득했던 내 앞의 길고 긴 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 그곳의 관공서의 일처리는 프랑스의 것이 그대로 들어가 정말 느려 터진데 코카를 주면 의외로 빨리 진행이 된다. 병원 예약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어떨 때는 코카를 주는 순간 나는 시누아(중국사람-아시아인을 보통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 하대의 의미로 쓰이기도 함))에서 갑자기 사모님(Madame 마담)으로 승격? 되어 불려지기도 한다 :D




가봉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코카 coca라고 줄여 부르는 것에 대해 궁금했었다.

콜라에는 코카콜라만 있는 게 아닌데, 펩시 콜라도 있고 현지에서 만들어진 다른 회사들의 콜라들도 있는데, 특히나 듣는 펩시콜라 섭섭하게 :D

왜 그들은 모든 콜라 종류들을 '코카'라고만 부르는지 의문이었지만 현지인들에게 물어봐도 정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들이 팁을 코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선물이라 생각되었던 부시맨의 '콜라병'처럼 ‘코카’는 인건비가 그리 높지 않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팍팍한 삶에 여유로움을 더 할 수 있는 '신의 선물'과 같아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곳에서의 코카는 마시는 음료인 콜라의 의미도 있지만 어떤 일에 대한 봉사료나 수고료를 적은 금액으로 지불하는 것은 '코카'라 하고 우리나라에서 명절 때면 회사에서 받던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떡값'이나 보너스 정도의 금액은 '꺄도 Cadeaux' (선물)라고 부르는 그 차이? 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코카의 또 다른 의미를 몰라 황당한 일도 겪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의 아프리카 생활중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로 남아있다 :D


아프리카 생활에 익숙지 않은 나를 도와준 것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시로 '코카' 받을 때마다 환하게 웃던 그들의 모습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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