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네가 나보다 얼른 나이 들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우리는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는 연상연하 부부다.
겨우 두 살. 남녀관계에 있어 나이 차이를 그다지 중요시 안 하는 프랑스에서는 우리는 어디 가서 연상연하 커플이라고 명함도 못 내민다. 하지만 국제커플도 아닌 한국 남자, 한국 여자 커플인 우리가 결혼할 때만 해도 드라마 같은데서나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지, 실제로 우리 주위의 한국인 부부들도 남자가 연하인 경우가 거의 드물었다. 특히 우리가 어울리는 지인들은 모두 남자가 연상인 경우였고, 게다가 와이프들 중 내가 제일 연장자였던..
이게 은근~히 신경이 쓰였었다. 나보다 더 어린 그녀들과 함께 있을 때면 왠지 내 나이를 더욱 의식하게 되고, 그녀들과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편하지도 않은 어떤 묘하고도 어색한 그 분위기,,,!
부부동반 모임이 있는 날이면 더 오랫동안 화장에 공을 들이고 옷도 아주 신중히? 골라야 했다.
나이 들어 보이지 않으면서도 발랄한 느낌의,, 어쨌든 그보다 '누나'처럼 보이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으니...
겨우 두 살 차이로 들어 보이면 얼마나 들어 보일까~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겨우 두 살 차이 나는 나의 연하남이 '최강 동안'이라는 것이다.
남편의 첫인상은 군인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약간 무뚝뚝한 분위기에 운동으로 다져져 단단해 보이는,
내 눈에는 음.... 쫌.... 잘생겨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내 눈에 콩깍지 인정)
내가 원래 '근육부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마른 듯하면서도 적당히 탄탄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살짝 심쿵했다. (근데 그때 그 아기자기했던 귀여운 근육들 다 어디 갔음? 남편에게 묻고 싶다. 요즘은 통 볼 수가 없어 가끔 궁금하기는 함)
나이차가 많이 안 나서 그런지 우리는 서로의 나이가 주는 이해와 생각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물론 세대차이도..
그런데 그의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외모가 늘 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어느 여자라도 사귀는 남자나 남편보다 '누나'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과연 중력을 얼마나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안고 살던, 아직 아기가 없던 신혼초에는 지금이야 괜찮지만 앞으로 5년 후 또는 10년 후에 연하 남편보다 더 늙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그 보다 더 어려 보이기 위해 과하게? 귀여운 스타일로 옷장을 채웠고, 엄마가 되어서는 출산 때마다 늘어나는 뱃살과 육아로 예전처럼 나를 가꾸지 못해 갑자기 축 쳐진 아줌마가 돼가는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아줌마가 되어 가는데 여전히 뽀송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남편이 얼른 '아저씨'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 클라쓰가 다른 프랑스 연상연하 커플 나이차
아프리카로 가기 전 내가 근무했던 직장은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유럽은 물론 아시아권 동료들도 있었고, 그중에는 한국분들도 있었다. 거의 언니뻘이었던 그분들과 우연히 프랑스에서 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들의 수다는 남편들에 대한 애교 있는 뒷담화로 이어졌다.
나는 그냥 옆에서 아~ 네~ 하며 듣고만 있었는데, 프랑스 남자와 국제결혼을 했거나 동거 중인 그분들 대부분이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보통이 3~4살이고, 동거하는 연하남과 20살 이상 차이나는 분도 있어 우리와 다른 프랑스의 후덜덜한 연상연하 나이 차이 클라스~ 를 느꼈다. 그중 어떤 분은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야 서로의 나이를 알았는데 남편이 7살이나 아래여서 황당했다는 말을 들으며 만나면 상대방 나이부터 궁금해하는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계속 듣고만 있다가 연하남과 살고 있는 나도 할 말이 많은지라 대화에 좀 끼고? 싶어서 '저도 연상이에요, 남편보다 했더니,
‘아 그래 ‘ 몇 실 차이 나는 데, 남편이랑은?’
‘ 저희 두 살이요!’
.... ....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지면서 그녀들의 표정은 마치 '재 뭐래니?'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을걸…)
겨우 두 살 차이 가지고 그녀들 앞에서 연상연하 커플이라고 해맑게 말했다가 깨갱했다.
나이 차이가 결혼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잣대가 되지 않는 프랑스인들,,,
그들을 보며 결국 결혼에 있어서 나이는 숫자일 뿐, 부부로서 함께 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같은 나이테로 살게 되며, 그리고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거,,, 살면서 생기는 서로에 대한 불만과 갈등을 하나하나 이겨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그걸 깨닫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3. 나는 그의 '나이 듦'이 정말 반가웠을까?
프랑스로 다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토요일 저녁, 그날도 저녁식사 후 집 근처 에펠탑으로 남편과 산책을 나갔다. 에펠탑이 가까운 이곳에 살면서부터 우리 부부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저녁을 먹고 집 주위를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코로나가 있기 전이니 주위는 늘 관광객들로 붐볐고, 우리처럼 저녁 산책을 나오거나 조깅을 즐기는 파리지앙들로 에펠탑 샹드 마르스 공원 분위기는 언제나 활기에 차 있었다. 주위에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틈에서 우리도 에펠탑을 배경으로 오랜만에 함께 '커플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틈만 나면 장소 안 가리고 그렇게 자주 찍던 커플사진을 언제부터인가 같이 찍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이제는 어디 여행이나 가야 함께 사진을 찍는 그냥 보통 부부가 되어버린 우리...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사진을 찍어서일까?
사진 속의 그가 너무 낯설어 보였다.
내 옆에 웃으며 서 있는 남편-연하남인 그가 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순간 사진을 보면서 겉으로는 차마 표현 못하고 속으로만 Youpi! 유삐!!(불어의 기뻤을 때 외치는 소리, 신난다, 야호 또는 오~예쓰! 이런 느낌)를 외쳤다.
그와 사는 내내 나를 신경 쓰이게 했던 그와의 외모적 나이 차이를 드디어 극복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를 보며 이젠 그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로 오면서 다시 예전처럼 바빠진 생활로 나는 그를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었나 보다.
언제 이렇게 그의 눈가에는 주름이, 머리에는 희끗희끗 새치가 생겼는지...
이제 내가 누나처럼 보일까 봐 하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은 잠시, 그렇게 어려 보였던 그가
이제 진짜 '아저씨'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무언가가 내 심장을 콕콕 찌르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의 연하 남편은 핸드폰 속 사진을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프리카 태양 아래 까맣게 그을린 피부, 눈가에는 주름이 잔잔히 퍼져있는 사진 속 자신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한때는 빛나던 동안을 자랑하던 나의 연하남인 그의 '나이 듦'이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아이들의 아빠로서,
열심히 살아온 그에게 주어진 '훈장'같아 보여 나의 기쁨은 잠시였고, 나는 그의 지친 어깨를 안아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