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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Mar 15. 2022

프랑스에서 명품백을 들지 않고부터 맘이 편해졌다

이곳에서 내  명품백을 알아주는 사람은 소매치기뿐이다

내게 명품백이란 이제 중년이 되었으니 어느 모임이나 중요한 행사에 들고나갈 만한 '가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20대에는 친구들이 드니까 , 엄마 아빠 찬스를 이용해서 얻은 적은 있어도, 결혼 후 신혼초에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사지 못했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명품가방들은 아프리카 생활을 해야 했던 아내에게 고마운 맘, 미안한 맘을 명품백으로 표시한 남편이 선물해준 게 전부이다.


#1. 내 , 잠시 잊고 있었다. 너희들을...


파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의 주 교통수단은 '메트로'였다.

파리에 한참 집시 소매치기단이 기승을 부릴 때였다.

주위 지인들도 당했다는 가슴 철렁한 그들의 소매치기 수법부터 심지어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집시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털렸다는 어느 지인의 말을 전해 들으며 나는 출퇴근길에 늘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나의 이런 조심성 때문인지 그때는 소매치기에 당한다는 말은 그저 '남의 일'이었다.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다시 돌아온 후 우리가 정착한 곳은 파리 15구 끝자락, 에펠탑 샹드마르스 공원이 있는 7구 경계선이었다. 어느 날, 같은 지역에 사는 어느 한국분이 술 마시고 밤늦게 귀가하다 일명 퍽치기를 당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O를 들고 계셨는데 동구권 사람들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다가오더니 인정사정없이 둔기 같은 것으로 그분의 머리를 내리친 후 들고 있던 휴대폰과 가방을 빼앗아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 한국분은 워낙 늦은 시간이라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머리가 너무 아파 일단 집으로 귀가한 후 다음날 경찰에 신고하였다고 했다.


핸드폰과 가방을 뺏기긴 했지만 다행히 큰 외상은 없었다고 했다. 다만 복잡한 서류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을 뿐.. 핸드폰도 핸드폰이지만 우리 같은 이민자들은 체류증(신분증)을 분실하거나 잃어버리면 다시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정신적 피곤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파리에 들끓는 소매치기 범죄행각이 점점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나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아침 출근길에 메트로 역으로 들어가는데 -내가 이용하는 메트로 출구는 조용한 곳이었다. 메트로 메인 출구는 항상 환승하는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나는 그 출구가 집에서 더 가깝기도 하고 해서 그곳을 이용했었다. - 계단을 내려가는데 뒤에 누군가 따라 내려오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는 별 느낌은 없었고 또 의심도 하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나비고(메트로 정액권 패스)를 꺼내 들어가려 하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후다닥 소리와 함께 뒤에 메고 있던 내 루이 OO 백팩을 잡는 것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뺏기지 않으려고 가방끈을 꼭 잡고 저항하는데, 동시에 누군가 'arrête' 멈춰!!! 하는 남자의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너무 무서워 덜덜 떨었고  그 남자분이 내게 '괜찮아요? ça va? ' 하고 물었다.

내 가방을 훔치려 했던 놈은 이미 메트로 안으로 도망간 후였다.

정말 찰나의 일이었다.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막상 당해보니 소름이 끼쳤다.

그 프랑스 남자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도 그 소매치기에게 가방이며 핸드폰도 다 뺏길뻔했는데,,

프랑스인들이 불친절하고 냉정하다는 생각을 잠시? 잊게 해 준 고마운 분이었다.


저녁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남편은 내게,  안 다친 게 다행이라며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으면 그냥 다 내어주라고 했다. 만약 그놈이 칼 같은 걸로 위협이라도 했으면 어쩔뻔했냐고,,

그렇네,,, 진짜 아주 나쁜 놈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네, 게다가 도와준 사람도 있어서 운도 좋았고...

그 일을 겪고 보니 내가 소매치기들의 '천국'인 파리로 돌아왔다는 게 확실히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2. 소매치기보다 더 황당했던 경찰의 태도.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정말 정말 조심했다. 출퇴근 길마다 항상 앞뒤 옆을 살피며 메트로에서 핸드폰을 보는 것도 멈추었다. 이렇게 초긴장상태로 산다는 거 자체가 피곤한 일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첫째 키위 군과 함께 파리 시내에 있는 시따디움 citadium이라는 쇼핑몰로 키위군 옷을 사러 갔다. 오랜만에 쇼핑이라 아이는 이것저것 담았다. 크리스마스 전이라 그런지 쇼핑몰 안에는 사람들로 붐볐었다. 계산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메트로 역으로 갔는데, 의외로 메트로 역은 한산했고 쇼핑백을 들은 키위 군이 먼저 계단을 내려가고 나는 아이의 뒤를 따라가며 가방에서 메트로 티켓을 찾았다. 그때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 쪽으로 무언가 스윽 스쳐 지나는 느낌이었다.

무슨 뱀이 스르르 지나간 느낌이랄까,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소매치기인가? 뒤를 돌아봐도 인기척이 없었다.

뭐지? 뭐지? 가방은 들고 있었고 안에 들은 지갑도 무사했다. 바로 따라오지 않은 엄마가 궁금했던 키위 군이 다시 올라왔다.

황당한 내 표정을 보며 '엄마 핸드폰은?' 하고 물었다.

순간 아차! 싶은 게,,,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이미 핸드폰은 사라지고 없었다. 도대체 누가 가져갔단 말인지??

귀신이 곡 할 노릇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종종 인터넷에 올라오는 파리 메트로에서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하는 사건들은 대개가 메트로 안 입구 쪽에  있다가 핸드폰을 밖에서 채가서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나는  진짜 '선수'들한테 당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 주머니에서 꺼내갈 때까지 내가 눈치를 못 채다니, 와,,, 정말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게다가 핸드폰은 얼마 전에 새로 산 최신형 아이폰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당했네, 당했어..

아마도 대목을 노린 소매치기들이 쇼핑몰에서부터 따라왔던 것 같았다.


더 기가 막혔던 건 경찰서에 핸드폰 소매치기당한 일을 신고 하러 가서였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내 순서가 되어서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그 경찰관이 하는 말이,,, 다시 RDV (헝데뷰 약속/예약)를 잡으라고 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아니 소매치기당한 걸 신고하러 왔는데 무슨 약속을 잡으라는 거지?

경찰관은 지금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마 내 접수까지 받으려면 밤 열 시가 넘어야 할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집에 돌아가고 목요일(그때가 화요일이었음)에 다시 오라는 거다.

와,,, 살다 살다 소매치기 사건 신고를 예약하고 다시 오라는 경찰관은 또 처음일세,,,


나는 오늘 일어난 일이니 그냥   없고 핸드폰 도난신고를 해야 다시 핸드폰을 만들  있다 설명하며(아이폰 구입할  보험을 들어놓았기 때문에) 그냥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 경찰관은 어깨 한번 으슥하다니 'comme vous voulez 원하시는 대로요' 하며

그제야 내 사건 접수를 해주었다.

그렇게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끝나고 나니 밤 11시가 되었다. 장장 4시간 반이 걸렸다.

중간에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남편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3. 명품의 나라 프랑스에서 명품백을 들지 않고부터 맘이 편해졌다.


얼마 전 친한 언니가 RER 역에서 동구권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에게 가방을 털렸다고 하셨다.

관광객이 거의 빠져나간 요즘 궁핍해진 소매치기단들은 현지인을 터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언니는 그냥 눈앞에서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다행히? 아이들은 지갑에 있는 체류증까지는 손대지 않고 돌려주었다고 하며,

아이들이 떠난 후 너무나 다리가 떨려 기차를 타지 못하고 한동안 벤치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대낮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나라에 경찰은 과연 존재하는지...

핸드폰을 도난당하고 신고하러 간 사람한테 예약을 잡으라고 하질 않나,

CCTV를 확인하겠지만 핸드폰을 찾기는 힘들 거라고 얘기하질 않나,

도대체 이들은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지, 그들의 월급 안에 내 피 같은? 세금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더 울화통이 터졌다.


그날 이후로  이제 스스로 나를 보호하고,  이상 소매치기들의 '먹잇감' 되지 않기로 했다.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명품가방 한두 개는 들어야 하는 우리네 같은 분위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내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명품가방을 들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럼,,, 소매치기를 당할 위험에서, 파리에서 대중교통이 아닌 자동차는 안전할까…?

 지인 중에는  창문을 열어놓고 신호등에 대기하고 있던 중에 오토바이에  그들이 열린  창문으로 그분의 가방을 가져가는 바람에 쫓아가지도 못하고

그냥 차 안에서 소리만 지르고 말았다는 분도 계신다.

역시 안전하지는 않다. (운전 중에는 꼭 창문을 잠가야 한다)


핸드폰 사건 이후로 난 더 이상 명품가방을 들지 않았고,  내 발걸음은 새털같이 가벼워졌다.

메트로 탈 때마다 이제 긴장하며 주위를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

내가 명품가방 대신 주로 드는 것은 '에코백'이다.

물건 담기도 편하고, 가볍고,

게다가 이런 에코백을 드는 나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다.

가방이 이러니 당연히 옷도 구색을 맞추어 가볍게 입게 되었다. 보통 청바지에 티셔츠 정도.

나의 외양  어쩌면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이들에게는 없어 보이고 궁색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으니  됐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곳에서 내가 든 명품백에 관심 있는 이들은 ‘소매치기’뿐이니…



행복을 사치스러운 생활 속에서 구하는 것은 마치 그림 속의 태양에서 빛이 비치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폴레옹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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