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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Feb 10. 2022

단짠단짠한 프랑스로 돌아왔다!

중년의 나이에 프랑스에서 인생 리셋하기

#1. 만만찮은 나이에 다시 시작하려니 겁이 났나 봐...


꽉 찬 중년이 되어 프랑스에서 다시 재취업을 해야 했다.

김 차장은 10년 넘게 살은 프랑스를 시~원하게? 버린 후 VIP 경호원이라는 새로운 일을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고 딱 5년 만에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김 차장과 나는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모험을 해야 했던 것이다.

프랑스 국적자인 남편과 장기 체류증이 있는 나는 서류상으로는 프랑스에서 다시 시작하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앞으로 뭐 해 먹고 사냐는 거지.


프랑스로 다시 컴백할 것을 결정한 후 김 차장은 모든 걸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하여튼 결단력과 추진력 하나는 짱이다.

그는 우리 가족이 프랑스에 도착하기 전 파리 시내에 이미 아파트까지 얻어 놓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유학생이나 관광객들이 빠져버려 좀 수월해졌지만 그 당시 파라 시내에서 아파트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힘들었는데 그 어려운 것을 김 차장이 해낸 것이다.

비록 네 식구가 살기에는 비좁은 작은 아파트였지만 우리 집은 아직 세입자와의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 바로 들어가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프랑스행을 결정하면서부터 내 걱정은 하나둘  시작되었다.

진짜 뭐 해 먹고살면서 아이들을 키울 것인지...

떠나기 전에 근무했던 직장처럼 괜찮은 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는지, 그동안 나이도 더 많아졌고

5년이라는 공백기간이 있으니 쉽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하며 차라리 식당을 파리에서 할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내 팔자에는 아프리카든 프랑스든 식당을 할 운은 아니었는지 우연찮게 연락이 닿은 예전 동료분의 제의로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둘 중 하나는 일단 직장을 잡았으니 시작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2. 그러게... 앞으로 펼쳐질 꽃길에만 눈이 멀었었어...


프랑스로 돌아온 지 3개월이 되었다.

바빠진 나를 대신해  김 차장이 아이들을 챙겼다.

김 차장이 초조해 보이는 게 보였지만 모르는 척했다.

나는 그에게 아프리카에서 열심히 살았으니까 당분간은 좀 쉬라고 얘기했다.

나는 잘 안다. 김 차장은 외국에 살아도 뼛속까지 한국 남자라 여자가 일하고 남자가 집에 있는 상황을 스스로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막상 프랑스에 다시 돌아와 보니, 떠나는 그에게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 했던 예전 직장 상사도 이젠 그 자리에 없었고, 자신의 부하 직원이었던 사람들도  승진해서 잘 나가고 있고, 주변 지인들도 5년이라는 세월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해 있는  모습들을 보며 김 차장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던 것 같다.(나의 시선으로는 어쩌면 그는 5년 전 자신의 선택에 처음으로 후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온 김 차장, 그에게서 술기운이 느껴졌다.

다음 달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얼마 전 얘기했던 그곳인가? 생각했다.

'정말 잘 됐네, 이제 백수 끝이네?  '하고 웃으며 그를 놀렸다. 그동안 맘이 편치 않았을 김 차장을 생각하며 나도 이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날 밤 김 차장은 그동안 맘에 담고 있던 그의 속내를 얘기했다.


'그때의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 다만 내가 갖고 있었던,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포기한 건 아닌지,,, 그건 좀 경솔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하지만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다시 시작하는 거고, 특히 당신 건강도 잘 챙겨야 하니까... 우리 힘내자, 고마워 늘,,,’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모르고 우리는 그것들이 원하면 언제든 다시 가질 수 있으리라고 자만? 했지만 인생이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깨닫게 되었고 프랑스로 돌아와 눈앞의 현실로 맞닥뜨려야 했다.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 새로운 도약이라고 생각하며 결정한 일이었지만,

아프리카로 다 가져가지 못해서 정리해야만 했던 우리의 추억과 손때가 그대로 묻었던 크고 작은 살림들,

직장에서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노력했던 10년의 시간들, 그리고 외국에서 만났지만 우리를 아껴주고 챙겨주었던 고마운 인연들도... 왜 그런 것들의 소중함을 우리는 미처 몰랐을까?

눈앞에 펼쳐질 꽃길만 보이고 내가 이미 들고 있는 게 꽃다발이었음을 시간이 지난 후 이제야 보게 되다니...


#3. 그래, 인생공부 잘~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5년의 아프리카 생활은 우리 부부에게 참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참된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일깨워준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도전만이 정답이 아닐 때도 있다는 것, 때로는 한 자리에서 버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우리나라 속담에 '우물을 파려면 한 우물을 파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환상과 기대로 지금 내 일과 내가 가진 것들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년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면서부터 나는  KFC 창업자인 커넬 샌더스 할아버지를 자주 떠올린다. 인생의 롤모델까지는 아니지만 이 분을 떠올리면 마인드 컨트롤이 된다.

62세의 나이에 치킨 하나로 성공하기까지 그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60세가 넘어서야 빛을 본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린 아직 젊고 시간도 많으니 다른 우물 한번 팠다고 해서  이게 끝은 아니야, 다만 우회를 좀 했을 뿐...

중요한 건 내가 선택한 삶이니 이제라도 최선을 다하여 천천히 가면 되는 것이다.

멀리 돌아서 왔지만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꼈다.

인생 공부 잘했고,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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