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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Jan 14. 2023

첫사랑이 아이아빠가 되어서 나타났다.

지난 사랑에 대한 기억도 이제 희미해질 만한데 가끔 이혼가정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나 글을 볼 때면 가슴 한편 욱신욱신,,, 마음이 기억하는 아픔으로 내 처음의 사랑이 떠오르곤 했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글로 옮길 만큼 편해졌다.)


철없던 시절 나는 정말 첫사랑 그와 내가 운명의 붉은 실로 연결되어 만난 인연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나는 하루아침에 문제 있는 가정에서 자란 여자가 되어 결혼을 약속했던 그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렇잖아도 자기 집안보다 기우는 집 딸인 내가 못마땅했던 그의 어머니에게 내 부모의 이혼은 우리 사이를 깰 수 있는 좋은 빌미를 주게 된 원인이 되어버렸다.


이혼한 부모를 두었다는 게 자식들 책임인 것도 아닌데 일방적인 편견으로부터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고, 그게 당연시되었던 주위의 시선들…그 시선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때는 나를 피해의식에 사로 잡힌 사람으로, 어느 때는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그리고 그 끝은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으니까… 로 결론지었다.




프랑스 학교에서는 한 반에 과반수 이상의 아이들이 이혼가정과 동거 중인 커플의 자녀들, 편모(미혼모) 또는 아직 프랑스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동성커플이 입양해서 키우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형태의 가족관계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만나 학교라는 공동생활을 통해 교우관계를 맺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을 배우는 곳으로 단순하게 학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작은 사회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교육환경에서 자라는 모든 아이들의 사생활은 차별 없이 보호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특히 부모의 이혼은 흔한 일이고  부모의 이혼사실로 아이의 가정교육이나 인성을 평가하지 않는다. 프랑스 아이들 역시 우리 아이들처럼 부모의 이혼이나 여러 가정문제(가정 폭력, 부모의 외도등)에 상처받지만 그것으로 인해 학교나 사회에서 불리한 입장이 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학교를 나와 어른이 되어 만든 세상에서도 다를 바 없다.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는 요즘 이혼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시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1. 첫사랑이 아이 아빠가 되어서 나타났다.


너와 나는 운명의 실로 엮인 게 정말 맞을까?

이미 헤어진 사람을 우리나라 안에서도 마주칠 확률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 비행기로 12시간을 타고 날아와야 도착하는 이곳…그 먼 런던 근교에 있는 뉴몰든이라는 작은 한인타운에서 그를 다시 마주치게 될 줄이야...


그날은 오랜만에 날씨가 좋았다. 그런 날은 뉴몰든에 있는 한인마트에 가곤 했다. 한국과자나 라면, 통조림으로 된 김치(포장 김치가 나오기 전이었다) 그리고 조미김등  하나씩 담다 보면 커다란 봉투로 두 개 이상은 나오기 때문에 비 오는 날보다는 짐을 들기 좋은, 해가 있는 날은 나에게는 시장 보기 좋은 날이 되어버렸다.


그날도 바구니에 필요한 것들을 가득 담고 계산대에 줄을 서고 있는데 막 계산을 끝내고 나가려던 어느 아주머니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다 우연히 줄 끝에 서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어머! 하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설마 이 상황이 반가웠던 것은 아니었을 테고, 그녀도 당황해서 그런 제스처가 나왔을 것이다.)


꿈에서조차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그의 어머니였다.

나는 시선을 돌려 모른척했고 그런 내 행동을 감지한 그녀도 내쪽으로 오려하다 잠시 망설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정말 태어나서 심장이 그렇게 빠르게 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계산을 하며 힐끗 밖을 보니 낯익은 그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유모차에 눈이 갔다.


그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참 힘들다.

왠지 모를 패배감? 나는 아직 이 모양 이 꼴인데 너는 여전히 행복하구나... 했던.


#2. 왜 하필 영국을 와서...


그러게 왜 그 많은 나라들 중에 하필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영국에 와서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들과 또 마주치는 상황을 만들었는지,,,


나는 그의 영국식 악센트를 좋아했다. 버터처럼 미끄러지는 듯한 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내 귀에는 뭔가 유니크 한 느낌의 그 악센트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가 자주 들려주는 영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 한 번은 꼭 영국을 가보리라 생각했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을 생각할 때 그는 영국의 아일 오브 와이트라는 곳에 나와 꼭 함께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와의 추억을 잊지 못해 영국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 잠재의식 속에 영국에 대한 호감과 익숙함이 있었기에 나는 별생각 없이 영국을 선택한 것뿐인데...


이미 영국생활을 했던 그가 그곳에 있는 것은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이지만, 그들이 나를 볼 때는 내가 과거에 연연해서 그를 잊지 못해 영국에 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미치자 혼자 누워 이불킥을 몇십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3. 이왕이면 잘 살지 그랬니...


그리고 어느 날, 다시 한번 그들과 또 마주치게 되었다.

자주 가던 한인식당 사장님 부부가 교회에서 열리는 바자회가 있으니 놀러 오라고 하셨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 외에는 거의 한국인들과는 교류가 없었기에 늘 혼자 밥 먹으러 오는 내가 외로워 보였나 보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기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사람들로 많이 붐볐다. 그들 속에 아기 유모차를 끌고 걸어가는 그와 그 옆에는... 그의 아내가 아닌 그의 어머니가 또 있었다. 오전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듯했다. 워낙 좁은 한인사회이다 보니 처음처럼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다.(언젠가 또 한 번은 마주칠 수 있으리라 각오를 한 상태였기에..)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를 알아본 우리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내쪽으로 다가왔다.

심장이 다시 요동치며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피할 이유는 없으니 당당해 지기로 했다.


잘 있냐는 그의 물음에 잘 지낸다고 대답해 주었다.

내가 영국에 있다는 소식은 친구들에게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망설이듯이 입을 무겁게 떼며 말했다.


한번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제대로 사과하고 싶다고, 나와의 마지막을 너무 예의 없이 끝내버려 미안하다고,,,,


그의 말에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진짜 내게 미안했으면 그때 내게 사과를 했었어야 했다고...

사과는 미안한 그 순간에 하는 거라고,

유효기간 지난 사과는 받지 않겠다고… 말이다.


멍한 표정의 그를 뒤로 하고 나는 그곳을 나왔다.

내 속은 사이다 한 컵을  원샷으로 마신 기분이었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나와 헤어진 후 집에서 고른 여자와 결혼했는데 이 년 정도 살다가 결국 헤어졌다고 했다. 아직 돌도 안된 아기를 두고 헤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만 (여자가 시집살이를 못 견뎌 그렇게 됐다고 들었지만 진짜 이유는 모른다. 궁금하지도 않고)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리 통쾌하지만은 않았다.


이왕이면 잘 살지 그랬니...



#4. 너는 내게 이런 멋진 광경을 보여주고 싶었구나...


그가 나와 함께 가고 싶어 했던 아일 오브 와이트를 갔다.

페리를 타고 저녁 즈음 도착했는데 해는 벌써 지고 바람은 찼다.

주위는 온통 까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밤하늘의 모든 별들이 나를 감싸 안은 듯 별들이 너무나도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맑고 까만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듯 빛나는 별들을 보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네가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이런 별밤이었을까?

mirror.co.uk  isle of wight


잠을 설치고 새벽 일찍 밖으로 나갔다.

그가 아일 오브 와이트에 가면 꼭 가봐야 한다고 말했던 니들즈(The Needles)의 하얀 바위들이 푸른 바다 위에 그림처럼 놓여있었다. 붉은 태양이 그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가슴 벅찬 자연의 아름다움을 맞으며 나와 이런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 했던 그도 한때는 내게 진심이었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한 모든 원망을 그 섬에 놓아두고 떠나며 그를 한 번은 만나는 게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5. 그래도 한 번은 너의 행복을 빌게…


그와 런던 근교에 있는 리치먼드 파크에서 만났다. 펍이나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것도 어색해서 그냥 공원에서 만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기는 하지만 워낙 넓은 곳이라...


역시나 서먹서먹 어색했다.

그런 분위기가 너무 싫어 이번에는 내가 먼저 물었다. 잘 지냈냐고...


잠시 후 그의 대답이 한숨을 쉬듯 가슴에서 올라오는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돌아왔다.

미안하다고, 그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었다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끝을 내는 게 아니었는데 자기가 너무 어리석었다고,

그리고 자기 엄마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읊조리는 듯한 그의 말이 가슴으로 들어오지 않고 허공에 맴돌았다.


오늘 만난 건 너의 사과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야. 말했잖아. 유효기간 지난 사과는 받지 않겠다고...

대신 나 괜찮다고 말해주려고.


나는 내가 다시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데미지가 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네가 나와 함께 가고 싶다던 그 섬에 다녀왔어.

그리고 보았어. 너의 그때의 진심을.

그래서 됐어. 그때는 나도 너도 진짜 어른은 아니었잖아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기 힘들었겠지.


그러니까 너도 이제 네 갈길 가,

나도 내 갈길 갈 거니까.


그리고,,, 우리 그래도 서로에게 첫사랑이었으니까,

한 번은 너의 행복을 빌어줄게.


나의 그 말에 그의 어깨가 갑자기 들썩였고 결국 그는 내게 눈물을 보였다.

그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영원히 안녕하자, 우리.

.

.

.



이제 그의 어머니도 이혼한 아들을 두었고
편부 밑에서 자라는 손녀딸을 키우고 있을 테니
그동안 이혼가정에 대한 편견이
좀 사라지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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