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경험 없이는 배움도 없지

호주에서 살아남기

by 미그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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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을 뒤로는 모든 게 수월했다. 마음가짐도 편해졌고 원인 모를 조급한 마음과 가끔씩 찾아오는 심한 긴장감과 두근거림도 사라졌다. 그리곤 돌아가기 전까지 시드니 방방곡곡을 여행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생 때 단기 연수로 호주에 왔을 때도, 지금도 시드니 밖으론 나가본 적이 없다. 멜버른이나 브리즈번도 안 가봤고 가까운 캔버라조차도 안 가봤으니 시드니라도 마스터하겠다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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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숨은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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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억이라 이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장소지만, 그래도 사진을 보면 그곳에서 보냈던 추억들이 생생하다. 이렇게 광활한 호주의 대자연 안에 있다 보면 인간은 한 없이 작기만 한 존재이며 나는 그저 이 큰 세상을 스쳐 지나는 생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100년이라는 인간의 수명도 자연 앞에서는 그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갈 것만 같이 압도당하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뭔가 숨이 막히고 답답한 압도감이 아니다. 마치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근심 걱정조차도 별거 아니라는 듯이 위로해 주는 느낌이랄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대도시를 떠나 살고 싶다는 로망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리게, 자연에 섭리에 맞게 사는 삶이 더욱 좋아지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보러 왔다. 사람들은 왜 연말과 새해를 기념하는 일에 진심일까. 한 해 동안 고생한 스스로를 수고했다 위로해 주는 마음일까. 새해에 대한 기대와 설렘일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연례행사에 점점 무뎌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더 이상 새로움이 없달까?

단지 똑같은 하루일 뿐인데 오랜 과거에 누군가 정해놓은 365일이라는 설정값이 다시 되돌아오는 때를 기념하는 것 아닌가 하는 쓸데없이 비관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똑같은 나날들에 가끔씩은 의미를 부여해야 살아갈 이유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으니 나도 한 껏 연말 분위기에 취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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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해외에서 비주류로서 늘 긴장하며 사는 것에 대한 피곤함을 토로하는 글을 접하곤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비주류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었던 편안함이 더 컸었던 같다. 물론 나는 이민자가 아닌 임시 거주자의 정신승리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영어화자가 아니기에 이해받았고 어리고 처음이라서 배려받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인구가 나날이 늘어가고, 단지 나에게만 특별했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나에게도 호주 생활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


한국에서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일부 시선이 어떠한지 안다. 아마 한국에 돌아가면 이때를 추억할 수 있는 사람도, 이때의 나의 고군분투를 인정해 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가끔씩 이때 호주를 가지 않았더라면 인생이 조금 단순했을까 생각한다. 한국에 살면서 적당히 일하고 틈틈이 친구들을 만나며 그렇게 살았더라면 인생의 괴리감이 좀 덜했을까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늘 결론은 이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더 진취적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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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의 나는 무모했다. 달랑 비자 하나만 가지고 외국으로 맨땅에 헤딩하며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내가 나를 책임지지 않으면 그 누구도 책임져 주거나 돌봐주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고, 기회는 말 그대로 내가 만들어가기 나름이라는 것도 알았다. 누군가는 도피성이라며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어떤 형식으로든 성장했다. 물론 나 혼자서 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시드니 첫 친구이자 정신적 지주, 지구 반대편 솔메이트 Selena, 마치 나를 딸처럼 아껴주었던 첫 직장 매니저 Nadene, 인상 깊었던 톰과 제리 듀오 Shane와 Thibaud, 나의 시드니 생활을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만들어준 Melanie, 민주언니, 보람언니, 동민오빠, 진아언니, 시연언니, 흥수오빠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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