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라도 일단은 그냥 씁니다

계속 써야 중요해진다니까

by 미고

성공하려면 한 가지에 몰입해야 한다고들 한다. 하나를 잡고 끝까지 파고들어야 결과가 나온다는 이야기.

‘여러 가지를 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한 우물만 파라.’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것저것을 동시에 하고 있다. 브런치도 하고, 인스타그램도 하고, 스레드도 하고, 심지어 유튜브 영상도 찍었다.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소위 말하는 어디에서 대박이 날지 모르니까, 그냥 여기저기 쪼아 보는 새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돈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사실, 하는 일들은 많지만 아직 버는 돈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쓰는 돈이 더 많다. 책장 곳곳엔 아직 펼치지도 못한 책들이 쌓여 있고, 신문에서 좋은 전시회 정보를 보면 얼리버드로 미리 예매도 해둔다. 남들이 보면 ‘낭비 아니냐’고 하겠지만, 나는 이걸 인풋을 위한 투자라고 부르고 싶다. 눈앞의 적자가 언젠가 흑자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는 밑거름이 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6살 첫 째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회사에 안 가?”


나는 혼자 뜨끔한 마음이 들어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집에서 글을 써서 돈을 벌어.”


아이에게 일하는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나는 그냥 주부, 혹은 백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라도 인정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마음은 어딘가 찝찝함이 남았다.

정말 나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돈을 벌지 않는데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또 묻는다.
“글로 어떻게 먹고 살 건데?”
“평생 먹고사는 법이 있긴 해?”
“그래서 너는 지금 얼마를 벌고 있는데?”

나는 전부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일단 그냥 쓰는 거예요.”



ChatGPT Image 2025년 8월 31일 오전 07_19_37.png

흑역사가 될지도 모르는 글.

형편없어서 차라리 지워버리고 싶은 글.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것 같은 글.

그런 글들을 지금까지 수도 없이 남겼다.

반대로, 나 혼자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을 때도 많았다. 좋아요 하나 달리지 않아 몰래 삭제했던 글도 있다.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았던 순간, 그것이 가장 큰 나의 흑역사다.

웃긴 건, 내가 대충 쓴 글이 스레드에서 뜻밖의 반응을 얻을 때도 있다는 거다. 잘 쓴 글이라고 믿었던 게 묻히고, 대충 쓴 글이 빛을 보기도 한다. 결국 나는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그게 바로 나의 흑역사이자, 동시에 나를 계속 쓰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알은 단순한 껍질이 아니다. 우리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가둔다.
깨지 않으면 살 수 없고, 깨는 순간에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깨야 할까.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껍질들이 너무 많다.

첫 번째는 완벽주의.
“흑역사 만들 바엔 아예 안 올리는 게 낫다”는 생각. 글을 다 써놓고도 브런치에서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했던 순간들도 많다.


두 번째는 즉시 수익화의 강박.
“일단 돈부터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 적게라도 당장 수익화를 시작하라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 유혹을 따르다 더 큰 자산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세 번째는 반응 중독.
좋아요와 댓글이 하루 컨디션을 좌우했고, 숫자가 글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착각했다. 댓글이 없는 글은 몰래 지웠고, 반대로 대충 쓴 글이 뜻밖에 반응을 얻을 때면 혼란스러웠다.


네 번째는 정체성 혼란.
작가 출신이지만 지금은 작가라 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지망생이라 하기엔 이미 쌓아온 작가 경력은 어쩔 건데. ‘주특기가 뭐냐’는 질문에 “그냥 N잡러예요”라고 웃으며 답했지만, 속으로는 답답함만 쌓여갔다.


마지막은 지망생 프레임.
출간 여부, 공모전 합격 여부가 나를 규정한다고 믿었던 생각. 남들이 인정해 줘야만 ‘진짜’가 된다고 착각했던 시절. '브런치작가'라는 타이틀은 그나마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이 모든 껍질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안전해 보였지만 동시에 나를 가두는 벽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다. 이것들을 깨지 않고는, 진짜 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완벽한 글을 쓰진 못한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작가 출신인데 글이 별 볼일 없네.’ 이런 상상에 가끔 움츠러들기도 한다.


하지만 멈추지 않기로 했다. 흑역사라도 괜찮다고.

그냥 쓰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를 쓰지 않고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없으니까.


‘미고스토리’라는 이름 역시 결국 나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이야기가 없으면 브랜드도, 글도, 책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오늘도 쓸 수밖에.


흑역사도 나의 역사다.

‘나’라는 사람이 성장하기까지 필요한 건 순간순간의 경험이다.

내 경험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서 쓰지 않는다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쓰지 않아서 중요해 보이지 않는 거다.

《작은아씨들》의 동생 에이미의 말처럼 말이다.

“계속 쓰면 중요해진다니까”


흑역사조차도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흑역사라도, 일단은 그냥 쓴다.
쓰는 순간, 나는 이미 껍질을 깨고 나온 작가니까.





이 이야기는 브런치북 [작가지망생을 그만둡니다]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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