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책상 앞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
변기가 또 막혔다.
(부업으로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 중이다.)
한 달 전에도 기술자를 불렀는데, 새로운 게스트가 입실하자마자 또다시 문제가 생겼다.
새 게스트에게 전액 환불을 해주고, 이번에는 제대로 원인을 찾자 싶어 다시 같은 기술자를 불렀다.
아침 일찍 남편이 먼저 숙소로 나갔다.
둘 중 한 명은 아이들을 챙겨야 해서, 내가 현장에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한 달 전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고, 또다시 문제가 생길 경우 변기 뚫기의 거의 최후 수단인 '고압세척'을 해봐야 한다는 솔루션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남편은 틈틈 사진과 함께 상황을 설명해 줬다.
오래된 집이라 배관 상태가 좋지 않고,
배수구 안에서 아주 오래 묵은 이물질들이 계속 나온다고 했다.
변기를 뚫는 비용은 5만 원부터 100만 원이 넘는 비용까지 천차만별이다.
나는 늘 많은 돈을 주고 숙소의 변기를 뚫어왔다.
‘변기 뚫는 비용이 왜 이렇게 비쌀까’,
‘잠깐 와서 몇 번 기계 넣으면 끝나는 일 아닌가?’
내가 바가지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을 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군말 없이 지불했었다.
그런데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그 생각이 얼마나 단순하고 무지한 판단이었는지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기술자분은 변기를 다 뜯어내고 내시경을 통해 오물이 내려가는 통로를 들여다봤다.
바닥 아래의 사정을 살피기 위해 꾸부린 자세로, 그렇게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각종 이물질들을 빨아들이는 소리,
그리고 가끔, 아니 자주 튀는 오물 때문에 괜히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남편은 중간중간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물질이 계속 나와서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
“파손된 배관 조각이 나왔는데, 정확한 위치를 찾는데 좀 힘드네.”
구체적인 사진 설명과 함께 보내준 남편의 메시지를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남편에게 말했다.
“배고플 텐데 뭐라도 꼭 시켜 먹어. 거기 사장님이랑 같이.”
남편은 햄버거 세트 2개를 주문해서 기술자분과 같이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는 26개월 된 딸을 키우는 아빠였다.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됐고,
작업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태도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배수 시설이 엉망인 집, 오물을 그대로 하천으로 흘려보내는 시골집은 그렇다 치고.
동네 어르신들이 다 몰려와 지켜보며 이런저런 훈수를 두는 현장.
막상 작업이 끝나면 “너무 비싸다”며 화내고 돈을 안 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오물을 뒤집어쓰고 일했는데
결국 기름값만 받고 돌아온 적도 있다고 했다.
큰 건물에서는 원인을 찾으려고 아침부터 밤 12시 넘도록 여러 층을 혼자 오르내리며 작업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일하면서 점심 챙겨준 사람은 처음이라며, 남편에게 고마워했다.
어쩐지 그 말을 듣는데,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동안 힘들었던 과정들, 아빠니까 버틸 수밖에 없는 강인한 마음이 느껴졌다.
억울함이나 불평이 아니라,
그냥 하기로 정했으니 해야 한다는 담담함이 있었다.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 냐면서 냉철했던 남편도 그 기술자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안 좋았다고 했다.
누구나 자기 역할이 있고
각자의 힘듦이 있다는 건 늘 알고 있었지만,
고된 작업 과정들을 막상 눈앞에서 보고 나니
그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남편은 무거운 장비를 옮기는 거라도 돕고 싶었지만, 장비와 작업복에 묻은 것들을 보고 선뜻 손대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까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남편의 미안함, 비슷한 또래의 아빠 둘이서 엉망이 된 배관 앞에서 각자 어떤 생각들을 떠올렸을까.
그리고 그 장면들은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나는 글쓰기에 꽤나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
창작의 고통,
마감의 압박,
작가라는 이름의 무게.
물론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가 너무 쉽게 “힘들다”라고 말한 건 아닌가.
깨끗한 책상에서, 따뜻한 방에서,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글이 잘 안 써지는 날이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투덜댔다.
하지만 누군가는 사람들이 꺼려하는 힘든 일을
티도 내지 않고 묵묵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돌아간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하는 일은 고통이 아니라
‘특권’이라는 걸.
글을 쓰기 어려워서 투덜댈 수 있는 삶.
창작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삶.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들이다.
작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누군가는 하고 있더라.”
그 말에 나도 입을 꾹 다물었다.
부끄러움이었고,
감사함이었고,
조금 더 단단해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쓴쓴다.
그리고 이 공간이, 이 행동이 다르게 보인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이 조용한 책상은
누군가의 험한 노동 위에 놓여 있다는 걸.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무엇이 고통이며, 무엇이 힘듦일까.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을 ‘고통’이라고 표현하는 건 그저 배부른 소리라는 것을.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