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까지 도전할 필요가 있었을까

해봐야 아는 것들

by 미고

한때 나도 노희경, 김은숙, 박재범 같은 드라마 작가가 꿈이었다. 이름 석 자가 작품의 품질보증서가 되고 사람들은 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작품 속 대사가 명대사로 회자되는, 나도 언젠가 그런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교양 작가를 하다가 드라마를 써보겠다고 도전한 적이 있다. 웹드라마를 시작으로 드라마에 발을 들였다. 처음 내 이름으로 크레딧이 올라갔을 때의 그 떨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비록 짧은 웹드라마였지만, 드라마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그 일을 계속하지 못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새로운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쓰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밤새 아이를 재우고 나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충분히 상상하고 마음껏 꿈꾸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글을 쓰는 일은 점점 멀어졌고, 그보다는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로서 나는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일할 때도, 웹드라마를 쓸 때도 수입은 넉넉하지 않았다. 특히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수입이 들쭉날쭉했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을 일부러 피했던 것 같다. 글을 쓰면 돈이 안 된다는 생각, 글보다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시간이 흐르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투자와 사업으로 수입원이 생기면서 생계에 대한 압박이 줄어들었다. 그제야 나는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하니까 정말 즐거웠다. 오랜만에 느끼는 글쓰기의 순수한 기쁨이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돈 때문도 아니고, 오로지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 그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


책도 더 많이 읽었다. 처음에는 돈 버는 마인드를 배우는 자기 계발서를 주로 읽었다. 부자가 되는 법, 투자하는 법, 사업하는 법. 그런 책들이 내 서재를 채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설을 더 자주 손에 들게 되었다.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과 울림은 또 달랐다.


그러다 나는 내 안에 숨겨진 문학소녀를 발견했다. 학창 시절, 남몰래 소설을 쓰곤 했었는데 커서는 정작 문학적인 글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올해는 소설을 꼭 한 번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연말에 모집하는 신춘문예 단편소설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드라마는 대부분 지문과 대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장면이 눈에 보이도록 쓰고, 실제 배우가 말하듯이 대사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런 글쓰기에는 익숙했다.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고, 배우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톤으로 대사를 할지 상상하면서 쓰는 것이 편했다.


그런데 문학소설은 많이 달랐다. 초고를 완성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이미 있었기 때문에 그냥 쭉 써 내려갔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소설처럼 보이게 고치는 과정이 까다로웠다. 소설가처럼 묘사해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드라마 대본에서는 "그녀, 슬픈 표정으로"라고 써도 괜찮았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슬프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그 슬픔을 느끼도록 써야 했다.


한 문장, 단 한 문장을 고치는 데 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결국 고치긴 고쳐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고쳤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초고보다는 나았다.


설명하지 않으면서 독자가 느끼도록 쓰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드라마는 화면이 있고 배우의 연기가 있어서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소설은 오직 글 만으로 모든 것을 전달해야 했다. 배경도, 분위기도, 상황도, 그리고 인물의 내면까지.


그렇게 초고를 쓰는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렸다. 일주일 만에 쓴 초고를 한 달이 걸려 고쳤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어차피 첫 도전이고, 이 정도 실력으로 등단은 어림도 없을 텐데 제출하는 데 의미가 있을까. 그냥 혼자서 소설을 써봤다는 것에 의의를 둘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내 SNS를 통해서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과정을 생중계했다. 초고를 완성했다는 글을 올렸고, 지금 수정고를 쓰고 있다고 공유했고, 퇴고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등기로 원고를 제출하는 그날까지, 모든 과정을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줬고 사람들의 응원을 불러일으켰다. 결과와 상관없이 도전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자신도 용기 내서 써보겠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그 댓글들을 읽으며 나는 이미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과의 여부를 떠나서,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으며, 그 과정을 즐기고 있으며, 목표한 대로 끝마쳤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었다. 방송 원고만 쓸 수 있는 사람인지, 에세이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소설도 쓸 수 있는지. 도전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나는 소설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등단 여부와는 상관없이, 나는 완성도 있는 단편소설 한 편을 써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작가지망생을 그만두기로 한 건, 작가로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는 의미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다만 이제는 누군가가 되려고 애쓰지 않을 뿐이다. 그저 나답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뿐이다.

그리고 그게 가장 나다운 작가의 모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ChatGPT Image 2025년 12월 7일 오후 02_29_59.png 신춘문예에 도전한 작가님들 고생 많으셨어요.


이전 18화기어코 날 울린 남편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