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아나는 것들
제일 무섭고도 아름다우며 강력한 무기는 거울이라 했던가. 이 무기 앞에 서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놈을.
난 끊임없이 거울 앞에 섰고 입을 벌렸고 오랜 시간 혓바닥을 관찰했다. 17년 전부터 나를 괴롭혀온 혓바늘 하나를 찾기 위해. 오직 그것 하나만을 위해.
혓바닥을 내밀고 있으면 침을 흘리는 것은 불문율이었기 때문에 혼자 은밀하게 행하는 의식 같은 게 되어버렸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혓바닥을 내밀어 강함을 과시한다고 했던가. 오직 혓바늘 하나만을 찾기 위해 혀를 길게 빼내는 나의 의식은 마오리족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있는 힘껏 내민 혓바닥이 거울에 비친다. 거울에 비친 어설픈 놈을 겁주기 위해 눈도 일부러 크게 떠본다. 눈알이 빠져나올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내어본다. 갸르릉 아니고 으르렁.
이런 내가 어떤 의미로든 ‘무서워서’ 혓바늘 그놈이 제까닥 밖으로 튀어나온다면, 지가 알아서 설설 긴다면 이 알 수 없는 통증을 드디어 뿌리 뽑을 수 있을지도.
어느 날엔가 입안에 혓바늘 하나가 돋아났다. 왜 17년 전이었을까. 잘은 모르겠다. 자의식, 자존심, 자만, 자존감… 이런 것들이 생겨날 무렵이었을까.
어떤 충격적인 말은 들은 후였던 것 같은데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큰 충격으로 몸이 굳어져서 입도 뻥긋하지 못했던 바보 같던 나를 한심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돋아난 이 혓바늘 하나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몸이 피곤한 날이면 돋아나는 다른 혓바늘들은 몸이 제 상태로 돌아가면 곧 없어졌다. 그러나 17년 전 얻게 된 혓바늘 하나는 악착같이 내 혓바닥에 버티고 살아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히 거슬리는데 막상 찾으려 하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아무리 살펴봐도 도저히 이 거지 같은 혓바늘을 찾아낼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이물감은 뭘까, 분명 혓바늘이 맞는데. 나는 끊임없이 병원을 찾아다녔다. 약국도 수없이 들락날락했으며 구강질환에 특효라는 연고와 먹는 약, 유산균, 민간요법까지 안 써본 것, 안 해본 것이 없었다. 끝내는 창피한 것도 모르고 사람만 만났다 하면 그가 누구이건 가리지도 않고 혓바닥을 내밀어 정밀한 관찰을 요구했다. 하지만 모두가 혓바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고 재차 입을 벌려댔다.
옆에서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던 이들이 나에게 정신과를 권유하기 시작했다. 혓바늘의 존재는 망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격렬하게 정신과를 거부했다. 하지만 곧, 날 괴롭히는 이 만만찮은 혓바늘이 그 거부감을 이겨버렸다. 나는 이를 제거하기 위한 일념 하나로 정신과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주는 약을 받아먹었다. 하지만 혓바늘이 없어지기는커녕 웬일인지 잘 자던 잠도 달아나는 통에 날마다 불면증에 사로잡혔다. 혓바늘이 거슬려도 음식은 잘 먹던 내가 섭식 장애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정기적으로 있는 의사와의 상담에서는 평생 문제이지 않았던 것이 문제로 대두되어 나의 온 신경을 갉아먹었으며 결국에는 위장장애까지 생겨버렸다. 온갖 신경증이 날 지배했고, 건강은 갈수록 악화됐다.
이윽고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되어 피폐해진 나는 고민 끝에 정신과를 끊어버렸다. 의사와의 상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 단 하나, 17년을 함께한 이 지긋지긋한 혓바늘 하나만 빼고.
조금 전에 튼 TV에서는 새해 시작 전의 전야 행사가 한창이었다. 나는 천천히 거울로 다가가 다시 올해의 마지막 혓바닥을 관찰했다. 징그럽다 못해 경외심마저 들게 하는 혓바늘 하나를 기어코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눈에 띄지 않는다.
턱이 마비되는 느낌과 함께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0에 맞춰 침이 한 방울 떨어졌다.
뚝-.
바닥에 침이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자괴감이 들었다. 17년을 괴롭혀온 혓바늘과 18년째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 여보세요.
- 여! 해피 뉴 이어. 미친놈아!
- ……
- … 왜 아무 말도 안 해?
화가 치밀었다. 왜 새해 벽두부터 이런 욕을 들어야만 하는가? 내가 정말 그렇게도 미친놈이던가?
미친 건 니들 아니야? 갑자기 혓바닥이 욱신거렸다. 17년 전이 생각났다. 돼먹지 못한 말을 듣고도 입도 뻥끗하지 못했던 바보천치 같던 나약한 내가.
바뀌어야만 했다. 기필코. 혓바늘과의 18년은 싫다.
무언가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18이란 숫자에 어떤 힘이라도 있었던 걸까? 나는 입을 뻥끗해 보기로 했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 시팔넘아
- ?! 뭐라고 이 새꺄?
- 먼저 욕한 건 너야. 18
그때였다. 입안에서 무언가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엄청난 희열이 몰려왔다. 그래 이놈이었어!
나는 우렁찬 욕과 함께 전방을 향해 침을 뱉었다. 무언가가 내 입에서 힘차게 튀어나왔다.
- 18!!! 그래 이제 해방이다!!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