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는 말씀

초대, 어떤 얼굴

by 미하

초대장을 보낼게요. 일단은.

발신인은 나, 이겠지만 그러니까 내 이름 하나 툭, 하니 적혀 있겠지만.

초대를 받은 당신이 과연 제대로 찾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런 걸 초대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걸 초대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고 보니 지금 이 순간 '초대'라는 글자가 이상하게 보여요. 그 뜻을 올바르게 품고 있는 글자가 이게 맞을까.

알죠? 그런 때가 누구나에게 있다는 걸. 우리는 가끔 이상한 순간이 불현듯 찾아오는 이상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있잖아요.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살뜰한 초대를 빙자하고선 살벌한 문전박대가 일어날지도 몰라요.

하지만 일단 초대장을 쓰던 시간의 내 기분은 좋았으니까요. 그래요. 어떤 나는 이기적이죠.

하지만 당신은 아마도 괜찮겠죠. 아니, 사실은 괜찮을 거라고 믿어야 내가 괜찮을 거 같아서.

어때요, 뭐. 당신은 이미 알고 있잖아요? 나의 여러 얼굴을. 그리고 그런 얼굴들이 하나씩 살고 있는 내 안에 있는 문들을.


초대장을 쓰는 오늘, 아침엔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내가 살고 있는 방의 문이 열렸어요. 뭔 바람이 불었는지 문이 저절로 조심스레 열렸죠. 그리고 무지 자연스럽게도 당신 얼굴이 떠올랐죠.


당신 얼굴을 한참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말랑한 시간이 좀 흐르다가 기분 좋은 얼굴의 문은 닫히고 말았는데, 그래서 바로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내가 사는 문이 열리고 말았어요. 그 두 개의 문은 딱 붙어있죠. 늘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번갈아 열리죠. 성격이 무지 다른 그 둘은 우습게도 사이좋은 이웃이에요. 기분이 좋았다가도 금방 우울해지는 건 그래서예요.


그렇게 찌르르한 시간이 지나다가, 그러다가 용기 있는 얼굴의 내가 살고 있는 방의 문이 살짝 열렸어요. 정말 내 얼굴의 문들은 언제 열리고 닫히는지 알 길이 없어요. 어쨌든 그렇게, 그대를 불러야겠어! 이런 용기가 불쑥 튀어나왔죠. 그래서 난 당신에게 초대장을 쓰게 된 거죠.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게 있죠. 좋은 건 빨리 사라지는 법이잖아요. 이 용기 있는 얼굴이 사는 문은 그 어떤 문보다도 빨리 닫혀요. 그래서 문이 닫힐 새라 급하게 초대장을 쓰는 바람에 난 주저리주저리 이런저런 말을 쓰지 못했어요. 당신을 이해시켜야 하는 그 무수히 많은 어떤 말들을 말이에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어요. 그냥 발신란에 내 이름을 끄적. 수신란에 당신 이름을 끄적.

본문은 초대합니다 끄적.


그래도 당신은 어쨌든 초대장을 받게 되겠죠.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죠. 불안한 시작일 뿐이죠.

당신의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일 테니까요. 초대에 응할 것인지 응하지 않을 것인지 당신은 서성거리게 되겠죠. 늘 서성거리는 당신의 발걸음은 더 이리저리 헤매게 되겠죠. 같은 고민을 오래도록 하게 될 당신의 발자국 깊이는 깊어지겠죠.


왠지 재밌네요. 고민하는 당신을 흥미롭게 상상하는 나는 지금 심술쟁이의 얼굴을 한 문이 열린 방에서 미소 짓고 있어요.

당신이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무기력의 얼굴을 한 방의 문이 열려있을 것 같아요.

기다림의 얼굴이 살고 있는 방의 문도 차례로 열리겠죠.

당신이 초대에 응한다면, 그것도 사실 걱정이에요. 어떤 얼굴의 내가 살고 있는 문이 열릴지 나도 모르니까요.


당신에게 기분 좋은 얼굴이나 쉬운 얼굴이나 감성으로 가득 찬 얼굴이 살고 있는 방의 문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어요. 발신인은 그냥 내 이름 하나뿐이었잖아요.

당신은 어떤 얼굴의 나를 상상하는 거예요? 어떤 얼굴을 생각하며 나를 찾아오는 걸까요. 당신이 왔을 때, 악당의 얼굴이라든지 찌질함이라든지 화난 얼굴을 하고 있는 내가 있는 방의 문이 덜컥 열린다면 당신은 쫓아내지 않아도 쫓겨나게 되겠죠.

나는 벌써부터 불안하죠. 어떤 바람이 불어 어떤 방의 문이 왈칵 열려 버릴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하는 내 말이 당신에게 닿지 않아도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그 문 앞에서 노크해 줘요. 비밀스럽게.

암호는 용기!

네 바로 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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