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대하여
나는 밑줄이다. 기다림이라는 글자 밑에 그어진.
나는 네가 무한히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의 눈은 항상 위를 향하고, 뒤를 향하고, 주변을 살핀다. 하지만 너의 시선은 밑을 향하지 않는다. 너는 내가 너를 기다린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너를 받쳐주는 존재일 뿐이다. 내가 있음으로써 너의 기다림은 한층 더 빛을 발한다.
그렇지만 너라는 기다림은 내가 없어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내가 없더라도 너는 눈부셨을 것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가끔은 내가 초라해진다. 가끔은 네가 원망스럽다. 밑을 내려다보지 않는 네가, 너 아닌 다른 기다림이라는 존재를 모르는 이기적인 네가.
너는 기다리는데 너무 익숙해져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다른 기다림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너는 기다림의 부산물인 아름다움의 심연에 빠져있다. 그것이 끌어당기는 마력에 묶여 벗어나지 않는다. 너라는 기다림은, 기다림이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너의 본질이므로.
넌 깨어지지 않으려 한다. 너는 아픔이 주는 달콤함을 맛보았다.
내가 너의 밑에 자리하게 되었을 때부터 넌 내가 가진 수많은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 난 너에 대한 관심, 인정, 애정, 의문, 질문, 이 모든 것들의 집합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태어난 그 시점부터 네가 나의 의미를 알아봐 주기를 기다려왔다.
너를 만나기 전,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 난 내가 하고 있던 행위가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어떠한 글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존재할 수 없는 끝없는 기다림. 실존하지 않는 존재의 기다림. 그 불명확하고도 모호한, 우스운 아이러니.
너라는 기다림을 만난 후 나는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미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아팠던 이유는 나를 있게 한 네가 기다림이었기 때문일까? 내가 만약 너를 만나지 않고 다른 글자를 만났다면 이렇게는 아프지 않았을까?
이렇게 계속 아파야만 하는 이유가 너라서, 벗어날 수 없어서 나는 또 아프다.
네가 만드는 당연한 아름다움의 심연이 나까지 집어삼키기를. 그 심연이 담고 있는 물이 너와 나를 번지게 해 우리가 서로 마주할 수 있기를. 네가 나를 볼 수 있게 하기를. 나 또한 이 기다림과 아픔이 당연하다고, 달콤하다고 느끼게 되기를. 내가 너를 만난 걸 후회하지 않게 되기를. 내 존재를 부정하지 않게 되기를.
너는 기다림, 나는 밑줄이다.